英.美철학계 異端者 로티 訪韓-아카데미하우스 세미나 참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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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현재 영.미철학의 가장 철저한.파괴자'.이단자'로 일컬어지는리처드 로티(66)미국 버지니아대 교수가 과학사상연구회(회장 김용준)초청으로 오늘 처음 방한한다.
79년 미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한 로티교수는 자유주의적 풍자가로서 오늘날 철학계.과학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있는 석학.
영.미철학계에서 근래 보기 드문.사상가적 면모'를 지닌 철학자로 철학의 급진적 해체와 자기 반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미국의 데리다'로 불리기도 한다.
80년대부터 전세계가 보수화되면서 포퍼의 뒤를 이어 자유주의철학을 대변하는 그는 국내 학자들에 의해 세계적 석학으로 선정될 정도로 일정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중적으로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어서.로티의 신실용주의'(김동식 지음.철학과 현실사刊)가 국내에서 그를 소개하는 저서로는 유일할 정도며.실용주의의 결과'.우연성,아이러니,연대성'(민음사刊)등 두권의 로티 저서가 그의 방 한을 계기로처음 역간됐다.
그의 철학은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영.미의 경험론적 전통,독일해석학및 프랑스 탈구조주의라는 두가지 큰 흐름 사이를 연결시켜절대적 존재를 가정하는 형이상학이나 객관성을 근거로 한 독단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객관적.초월적 진리,자기 동일적인 정신적 실체등을 가정하는 것을 근거로 신념과 합의를 끌어내거나 변화를 강제하는 것은 도그마라는 것이 로티의 생각.
로티의 이런 생각은 나름의 중요한 정치적 함축을 지닌다.객관적.절대적 진리에 바탕을 둔 .강제적 합의'를 비판하고자 하는것이다.그는 포퍼의.진리의 오류 가능성'을 받아들여 초월적이고영구불변인 진리는 실효성이 없는 공허한 .은유 '로 여긴다.대신 시인과 혁명가 같은.자유로운 역설가(아이로니스트)'들의.대화'와.연대'에서 진리의 가능성을 찾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자신도 논리적 체계 대신 자유분방한 은유와 풍자를 사용해 우회적 접근방식을 선호한다.
창조적 어휘로 독단적 진리에 맞서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갈 수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과학에 대한 그의 풍자와 비판의 파격성 때문에 그는 상대주의와 회의주의라는 의혹을 받는다.
그러나“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불경(不敬)이 없듯 독단적 진리를 부정하는 사람에게.상대주의적 곤란'은 없다”고 단언한다.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구분이 없는 곳에서 상대주의라는 비판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탐조(探鳥)를 위해 9일까지 일정을 비워놓을 정도로 새에 푹빠져있는 로티교수는 9~10일 아카데미하우스에서 30여명의 국내 전공자만 참가한 가운데.실용주의,과학 그리고 문화'라는 주제의 초청 세미나에 참가해 세편의 논문을 발표한 다.
또 11일 오후2시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13일 오후3시 연세대 인문관에서 각각 강연한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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