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論>소리꾼 장사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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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우리의 중년에게는 문화가 없다.청년의 막바지부터 취업의 좁은 문을 뚫느라 허덕이고,술집과 노래방에서 소위.사회'를 배우다보면 어느덧 30대.이젠 결혼의 통과제의가 기다리고 있다.그리고10년간은 농경 문화권의 후손답게 근거지 마련에 허리가 휘어야하고 그 다음 10년간은.교육입국'으로 위장된 출세주의에 사로잡혀 자녀의 진학에 시시각각 악착을 떨어야 한다.
물론 세상은 변했고 직장과 가정의 풍속도는 컴퓨터.신세대의 대두와 함께 새로운 지도를 그려가고 있으며.마이홈'의 정착성은.마이카'의 기동성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하지만 그 앞의 세대와 비교할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문화에 대한 무관심이다. 따라서 구매력에 의해 주도권이 결정되는 대중문화는 유일하게 노동하지 않는 세대인 10대의 호주머니에 의해 판가름난다.
비겁하게도 우리의 중년은 10대 취향의 일방 독주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거나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이들 의 문화에 억지로 끼워맞춘다.자신의 감각이 여전히 젊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2차 술자리에서 최신 유행의 댄스뮤직 한 곡조를 뽑아야 하는 저 풍경을 보라.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이 땅의 30,40대는 70년대 청년문화와 80년대 저항문화의 세례 속에 자신의 감수성을 조율한 이들이다.
통기타와 청바지 혹은 스크럼 속의 저항가라는 자신의 낭만주의적 언어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처음으로 어른들이 지배하던 문화를 전복시켰던 그 야심만만함은 어디로 실종됐는가.
혼절을 불사하는 10대의 열정을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중년은 은근히 밤을 덥히는 장작불의 끈기와 같은 내면의 불꽃으로 자신의 문화를 스스로에게 제시하고 확장시켜야 한다.시장에서 중년의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우리의 문화지형도는 불 구가 된다.성인의 문화는 10대의 주류문화를 견제하고 균형을 맞출 사회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 비관적이다.95년 일제히 컴백 앨범을 발표했던 우리 대중음악의 소중한 베테랑들,가령 산울림의 김창완,양희은,사랑과 평화,들국화의 의욕은 무참하게 버림받았고 베테랑들에 대한 음반산업 기획자들의 관심은 완전히 이탈 했다.이제 성인의 음악은 최백호의.낭만에 대하여'처럼 인기드라마의 점지에사활을 걸어야 할 것인가.
이런 불모의 상황에서 전통에서 현대를 가로지르는 40대 소리꾼 장사익의 조용한 바람은 주목할만하다.소리 없이 사장될 수도있었던 그의 데뷔 앨범(1995)은 지난 2년동안 질경이처럼 살아남아 거의 5만장(!)에 이르렀고 지난 11 월24일의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그의 동년배 음악 벗들인 임동창(피아노).김광석(기타).김규형(북)과 함께 일군,40대만이 가질 수 있는웅혼한 통찰력의 무대였다.이 무대가 무엇보다도 흔연한 것은 만원을 이룬 청중의 주력이 성인들이었 다는 사실이다.
노래방 공포가 음치 클리닉까지 등장하게 하는 세상이다.산업으로부터,매체로부터 자신들의 문화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수요가 없는 곳에 공급이 있을 턱이 없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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