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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전 부정선거 보고 눈감은 거 자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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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희태(70·사진) 한나라당 대표가 1960년 4·19 혁명에 참여하지 못한 참회의 고백을 48년 만에 했다. 3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사단법인 4월회(4·19 정신 계승 발전 단체) 초청 오찬 강연회에서다.

박 대표는 이날 강연 서두에 “제겐 중요한 말이고, 언제 어디서든지 하고 싶었던 얘기지만 기회를 얻지 못해 하지 못했다”라며 “4·19에 대한 고백을 몇 말씀 드리겠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진 발언은 ‘대학생 박희태’가 겪은 4·19 얘기였다.

“1960년 새 학기가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봄방학이라는 게 있어 (서울대) 법대 4학년인 저는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 전깃불도 없고 전화도 없는 심심산골에 박혀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는데 투표를 하라고 해서 동네까지 나갔다. 가서 보니 3인조, 5인조로 국민을 동원해 표를 찍도록 조장이 감시하는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우리 동네에 국회의원이 나타나 투표 현장을 시찰하는데 순간적으로 울분이 나 그냥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내가 이 일을 저지르면 홀로 나를 키워오신 어머님이 얼마나 상심하고 내 앞 길도 이걸로 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머뭇거리고 주저하다가 그 국회의원이 내 앞을 지나쳐 가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4월이 되면서 서울에 있는 학생들이 전부 다 거리로 나와 부정을 규탄하고 정권을 물러가라고 하는 정치적인 구호로 발전하였다. 학교는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시골에서 육법전서와 씨름하면서 지냈다.”

박 대표는 4·19 이듬해인 61년 13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그날 이후로 4·19 기념일이 올 때마다 엄청난 회한과 모멸감이 떠나지 않았다”라며 “요즘도 기념일에 수유리 가서 참배를 하지만 남다른 죄책감에 젖는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4월회에 가입하라는데 저는 자격이 없다”라며 “방관자였고 비겁한 사람이었다는 낙인을 스스로 찍고 있어 참회의 길을 좀 더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혁명과 쿠데타가 있었지만 그 어떤 것에도 나는 동조를 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4·19 혁명만은 정권을 탐한 혁명이 아니고, 그만큼 순수해서 더 감동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의 ‘용기’ 있는 고백이 끝나자 사회자는 “가슴이 뭉클하다”라고 했고, 장내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행사를 주관한 4월회 측은 “당시 참여를 못했지만 4·19 이후 한국 민주화 발전에 큰 공을 세워 회원이나 다름없다.”라며 박 대표가 회원에 가입할 것을 거듭 요청했고, 참회로 심경이 홀가분해진 때문인지 박 대표는 가입서에 서명을 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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