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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지역 아닌 ‘작은 습지’는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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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10회 람사르 총회가 열리고 있는 경남 창원에서 북쪽으로 20㎞, 우포늪에서 남동쪽으로 25㎞ 떨어진 창녕군 부곡면 수다리.

‘물이 많다(水多)’라는 뜻의 마을 이름대로 낙동강 지류인 청도천이 곧잘 범람하던 이곳에는 1㎢ 넓이의 점촌습지가 있었다. 하지만 29일 기자가 찾은 이곳은 습지 흔적은 보이지 않고 가을걷이가 한창인 여느 들판과 큰 차이가 없었다.

마을 주민 윤보상(74)씨는 “이 지역은 늘 갈대가 숲을 이루고 있었지만 주민들이 논과 밭을 만들면서 메워졌다”고 말했다. 4년 전까지는 습지가 많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조그만 물길만 남기고 모두 논밭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이 정부에 건의해 2004년 10m 높이의 튼튼한 둑을 쌓은 뒤 개간했기 때문이다. 습지가 있던 자리에는 레미콘·철골·석재 공장도 네 곳이나 들어섰다. 오랜 세월 습지의 주인이었던 다양한 수생식물과 철새가 사람들에게 땅을 내주고 쫓겨난 셈이다.


이처럼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습지와 지정되지 않은 습지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람사르 총회를 맞아 우포늪에 관심이 많아지는 것과 달리 이름없는 소규모 습지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 2006~2007년 부산·울산·경남 지역 140개 습지의 보전 상태를 조사한 결과 29%가 불량한 것으로 판정됐다. 특히 마을 인근의 하천 배후습지는 47곳 중 22곳이 개발로 면적이 줄고 심하게 훼손됐다. 창녕군 점촌습지 등 네 곳은 흔적도 없어졌다.

◆동해안 석호, 서해안 갯벌도 위기=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석호(모래톱으로 바다와 분리된 자연 호수) 가운데 광포호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면적이 0.18㎢였으나 90년대에는 0.07㎢로 줄었다. 경포호와 매호도 크기가 예전의 절반에 불과하다. 강원대 허우명 교수는 “동해안 석호는 인위적 매립으로 면적이 줄고 있다”며 “훼손된 소규모 석호는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서남해안의 갯벌도 많이 줄었다. 남한의 갯벌은 2005년 현재 약 2552㎢로 60년의 절반 수준이다. 87~98년 새만금·시화호 등 810.5㎢가 매립됐다. 최근 10년 동안에도 100㎢ 이상의 갯벌에서 매립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가로림만과 강화도·석모도 등 여러 곳에 대규모 조력발전 시설이 검토되면서 갯벌 파괴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용기 새만금생명평화 전북연대 위원장은 “람사르 총회 행사를 치르고 나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 없이 과거로 돌아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습지총량제 도입을=현재 습지보존법에는 전국 20곳의 내륙습지(호수·연못·늪 등)와 연안습지(갯벌) 280㎢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보존 상태가 불량한 습지를 개선하기 위한 ‘습지개선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한 곳도 없다.

전문가들은 전국의 모든 습지를 조사해 어떤 상황인지, 어떤 생물이 서식하는지를 파악하고 목록화·등급화해서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방상원 박사는 “개발로부터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습지총량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김지태 자연보전국장은 29일 창원 람사르 총회 본회의 발언을 통해 “2012년까지 습지보호지역을 30곳으로 늘리고 습지총량제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창녕=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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