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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넓은 도로들이 도시 기능 제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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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75·사진)가 서울을 찾았다. 도시의 문화 자산을 키워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를 주제로 서울시가 30일 개최한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총회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했다.

서울을 여러 차례 방문한 그는 “서울은 산업적으로 무척 빠르게 성장한 도시이면서도 오랜 역사 유산을 간직한 도시”라고 평했다. 특히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오래된 도자기, 한국 여인의 전통 의상, 음식 등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산·언덕·한강 등 자연환경도 도시계획적으로 천혜의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한강은 커다란 기회(great opportunity)”라며 “한강 유역을 충분히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장점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서울시는 잘못된 도시계획으로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왕복 6∼8차선에 이르는 넓은 도로를 꼽았다. 차량 위주의 도로 체계에서는 도로가 시민의 동선을 끊고, 그로 인해 도시가 작은 지역들로 나뉘어 고립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민이 먹고, 일하고, 만나고, 즐기는 공간으로서 도시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로저스는 서울 발전 방향으로 “도시 공간이 중요도에 따라 재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심 곳곳에 대·소규모 공원과 산책로를 우선 배치하고 고층빌딩 밀집 지역은 듬성듬성 조성하되 고층빌딩군은 버스·지하철로 연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도시계획 철학은 ‘콤팩트 시티(com­pact city)’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건물을 촘촘히 세워 밀도를 높이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개념이다. 그는 “도심 속 노후 공장터, 버려진 주택가 등 이용 효율이 떨어지는 지역을 효과적으로 재개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서울 인구를 수용하면서도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연장선상에서 서울 주변 그린벨트를 풀어 주거 지역을 확충하는 정책을 반대했다. 도심에서 떨어진 주거단지 조성은 교통 문제, 그로 인한 환경 문제 등을 부를 게 뻔하다는 것이다.

유럽권에서 서울의 인지도가 도쿄·베이징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도시는 매년 1%씩 점진적으로 변한다. 오랜 시간을 두고 개선해 나가야 할 일”이라고 답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나 줄곧 영국에서 활동해 온 로저스는 1971년 프랑스 파리의 복합문화공간인 퐁피두센터를 내부 철골구조가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설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공장 건물을 연상시키는 런던의 로이드사 본사 사옥과 거대한 철제 기둥이 삐쭉삐쭉 솟아난 밀레니엄 돔, 물결 치는 듯한 모양으로 지붕을 꾸민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 청사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도시계획 방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런던·바르셀로나시 도시계획 자문을 맡고 있다. 런던 동쪽의 낙후 지역에 들어선 밀레니엄 돔 등 그가 설계한 건물들은 도심 풍경을 바꾸는 도시계획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요즘 그는 9·11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초고층 건물을 세우는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프로젝트, 서울 여의도 통일주차장 부지에 72, 54층 건물을 짓는 파크원 프로젝트 등에 관여하고 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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