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장정일 소설"내게 거짓말..." 독자가 판단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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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문학판에서는.문제소설'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작가 아무개의.문제작'이라거나.199×년의 문제소설'같은 수식이 비평문이나 소설 모음집 표지에 자주 등장하곤 하는 것이다.물론 이때의.문제소설'은 작품 나름대로의 일정한 문학적 성취 와 성과를 반영하는 것이다.사전적인 의미와는 달리 문학판에선 거의.성공작'을 대신하는 말로 사용돼온 것이다.
그렇다면 장정일의 전작 장편.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규정돼야 마땅한 것일까.나는 그 소설이 출간직후부터.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점'을 지닌 소설로 부상되는 과정을 지켜봤다.물론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었다.이것도 소설이냐,이런 걸 쓴 이유가 도대체 뭐냐 하는 식의비판과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가 하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하는 혹자도 있었다.뿐만 아니라 작가와 작품에 대해 극렬하게 욕을 하는 입장도 있었다.아무튼 다 양한 견해의 표출이 점검하고 논의해야 할 많은 문제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나는 판단했다. 사법당국이 나서고,출판사가 발빠르게 항복을 선언하고,책이 회수.폐기처분되고,출판 관계자가 구속되고,작가를 구속하겠다는 사법당국의 입장표명이 있기 전까지,어쨌거나 작가와 작품은 문학판과 독자가 준비하는 나름대로의.도마'를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다.세상은 어떤 측면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다.자연스런논의와 여과(濾過)과정을 거쳤다면 어쨌거나 그도마 위에서 작가와 작품은 마땅한 대가를 치르거나 응분의 평가를 받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사법당국이 작가의 구속입장을 밝힌 뒤부터 작가와 작품에 대해 들끓어오르던 논의의 기미는 일시에 가라앉아 버렸다.작가와 작품이 관례에 따른 도마로 가기도 전에 돌연.희생양'으로 태를 바꾼 때문이었다.이제 그 작가와 작품에 대 해 견해를 밝히는 사람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문제의 초점이 오로지 인신구속쪽으로 쏠린 때문일 것이다.뿐만 아니라 문학판과 독자들이 스스로 짚고 넘어가야 할 많은 문제를 사법당국에서 발빠르게 희석시켜준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하지만 작가와 작품을 극렬하게 욕하던 사람도 작가의 구속에 반대한다는 서명에 동참하고,독자들의 반응을 알아볼 수 있는 컴퓨터통신 공간에서도 구속을지지한다는 입장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튼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보기좋게 생매장당해버렸다.문학적 논의와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도 못한채 사법적 판단의 기민성에 의해 그 무엇도 아닌 작품이 돼버린 것이다.어째서 작가와 작품을 비평할 수 있는 문학 고유의 기 능까지 희석하고,박탈하려는 힘이 발휘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인신구속으로 진지한 논의를 원천봉쇄하는 것도 사법권의영역에 속한다고 판단한 때문일까.아니면 사법당국에서 보기에 글쟁이들은 자기네 스스로.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저능아 집단으로 보여서 그런 것일까.작가를 구속하려는 발빠른 처 리 의지보다 작가를 구속함으로써 입게 될 훨씬 큰 무형적 손실을 고려하지 않으려는 처사는 어느 시대에도 결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 마녀사냥이 필요한 시기인가.
朴 相 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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