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33. 서울올림픽 유치(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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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대표단이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앞줄 왼쪽부터 이원경 유치위원, 조상호 체육회장, 박영수 서울시장, 정주영 현대 회장, 이원홍KBS 사장. 뒷줄 왼쪽이 필자.

 일본이 JAL 승무원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에 우리도 KAL 승무원 5명을 투입했다. 김여옥·유승희·최승희·김성미·최정란이었다. 미스 코리아 3명도 데리고 갔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하루 종일 코리아하우스 전시장에 서서 손님에게 인삼차와 인삼주를 대접하고 선물을 줬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의 경험이 있었고, 나고야는 오래 전부터 올림픽 유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승리를 과신한 나머지 막상 총회를 맞는 자세나 준비는 부실해 보였다. 나고야의 전시실에는 여성 홍보요원 단 두 명에 사진 몇 장만 전시돼 있었다. 더구나 메인스타디움 등 경기장이나 시설은 계획만 세워놨지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은 없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새로 짓고 있는 주경기장을 비롯해 준비상황을 자세히 담은 사진과 책자·팸플릿을 갖춰 서울이 올림픽 유치에 얼마나 열정을 쏟고 있는가를 보여줬다. 일본은 나고야 중심이었지만 우리는 거국적으로 나섰다. 서울과 나고야가 아니고 한국과 나고야가 경쟁하는 양상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고야가 유리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투표 전날 만난 LA 타임스 켄 라이히 기자는 “나고야가 20표 차로 이길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까지 했다.

드디어 1981년 9월 30일, 88년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기 위한 IOC 총회가 열렸다. 양쪽 유치단이 한 시간씩 설명하고 질의 응답을 했다.

소련의 티토프 위원이 “한국은 일본에서 60억 달러 차관을 얻으면서 어떻게 올림픽을 치르려 하느냐”고 물었다. 유창순 대표가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과 올림픽 경비는 다르다. 다른 나라는 경제개발 차관을 얻지 않는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리비아 위원이 “한국은 일본보다 멀어 항공료가 더 비싸지 않느냐”는 무식한(?) 질문을 해서 “일본과 같은 거리, 같은 항공료”라고 답했다.

우리는 퇴장했고, 투표가 시작됐다. 짧은 시간,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솔직히 이긴다는 자신은 없었다.

개최지 발표 시간, 사마란치 위원장이 단상에 섰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그의 입을 주목했다.

“쎄울, 꼬레아.”

순간 멍해졌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누군가 “만세”를 외쳤고,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서로 얼싸안았다. 나중에 들으니 투표 결과가 52 대 27이었다. 더블 스코어의 완벽한 승리였다. 사마란치 위원장도 발표를 하면서 ‘이게 잘못된 집계가 아닌가’하고 의심했다고 하니 현장에서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카지노 2층을 빌려 축하 리셉션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정주영 회장은 덩실덩실 춤을 췄다. 한진 조중훈 회장은 특별히 보잉747기를 동원해 우리의 귀국길을 축하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청와대로 직행해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각자 한마디씩 하는데 “모두 합심해서 열심히 했습니다”하니까 전 대통령이 “한국사람들은 자기가 잘했다고들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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