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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에 짓밟힌 소시민의 삶-김동선 장편 "잠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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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재판 받으러 호송돼갔을 때 강당처럼 큰 법정에는 피고들로 가득했습니다.모두 일제 검거에 걸려든 사람들이었지요.술집 주인과 다툰 새신랑한테는 징역 10년,누군가하고 싸운 사람에게는 8년등 상상을 초월한 중형을 재판관들은 마치 재미 있는 일을 하는 것처럼 선고하고 있었습니다.80년 쿠데타 권력이 자행했던무자비한 행위에 얼마나 선량한 사람들의 인생이 절단났습니까.그때 이 작품을 언젠가는 반드시 쓰리라 떠올렸습니다.』 작가 김동선(金東銑.사진)씨가 장편 『잠행』을 1,2권으로 펴냈다(리뷰 앤 리뷰 刊).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金씨는 작품활동과 함께 언론활동을 펼치다 80년5월17일 당시 기자협회 편집실장으로 체포돼 1년간 옥고를 치렀다.그후 첫번째로내놓은 본격 장편소설이 이 『잠행』이다.
PC통신 천리안 매직콜에 95년12월부터 96년7월까지『목사와 빨간모자』라는 제목으로 연재돼 조회수가 10만에 육박할 정도로 이미 사이버 공간에서 인정받은 작품.「빨갱이」란 누명을 쓰고 경찰에 의해 희생된 아버지와 그로인해 몸져 누운 어머니.
그 원수를 갚겠다고 주인공은 열네살에 가출,천하의 싸움꾼이 된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대대적인 깡패소탕작전의 특A급 수배자로 지목된 주인공은 도피의 끝없는 잠행을 시작한다.그 잠행중 소매치기.싸움패등을 만나 의기투합해 부산의 밀수세계에 뛰어들어 펼치는 활극과 사랑이 이 작품의 줄거리를 이룬다 .
마치 거친 호흡의 액션물을 보는 것같은 박진감과 밀수세계의 생리를 파헤쳤다는 데서 이 작품은 분당 50원을 내고 읽어야하는 PC통신 공간에서도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이 작품은 권력의 횡포를 파헤치고 있다는 데서 사회고발소설로도 읽힌다.집권을 영구화하기 위해 반대.비판자는 서슴없이 좌익으로 몰아 제거해버리는 군사독재정권.거기서 박살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그리고 다시 폭력배들의 생 리에 그대로투영된 잘못된 권력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그 잘못된 권력의 희생자이기도 했던 金씨는 『쿠데타 권력의 폭압에 피해를당했던 모든 분들에게 바치는 심정으로 썼다』며 또한 『이 시대를 견디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힘겨 운 세월이 전하는 쓸쓸한 위로의 흔적이 되기 바란다』고 밝힌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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