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드는 '白濠主義'에 아시아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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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호주 시드니 파라마타고교 1년 全모(16)군은 현재 정학상태다.백인 동급생을 몽둥이로 위협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사연은 이렇다.지난달 같은 반의 백인 데이비드가 全군을 보며『교실에 왜 이리 「노랭이(gooks)」들이 많지』라며 비아냥거렸다.「국(gook)」은 동양인을 멸시하는 속어.
모욕감을 참을 수 없던 全군은 그와 싸움을 벌였고,분이 안풀리자 수업후에 막대기를 들고 그를 교문앞에서 기다렸다.그러다 한 백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고 학교에 통보돼 정학처분을 받았다.이에 교민신문들은 『부당한 처분』이라며 대서 특필했다.한인회에서도 『全군이 전학하려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며 항의중이다. 78년 백호주의(白濠主義)를 청산한 호주에서 최근 다시 심상치 않은 인종차별 조짐이 일고 있다.특히 9월 무소속 폴린 헨슨(여)의원이 불을 지폈다.헨슨의원은 『아시아 이민자들이 호주를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며 정부의 이민정책을 공 격했다. 이에대해 집권때 아시아 중시정책을 폈던 야당 노동당이 크게 반발,이 문제는 정치쟁점으로까지 부각됐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이달초 2천60명 호주인을 대상으로 한여론조사까지 보도했다.조사에서▶53%가 아시아 이민감축을▶62%는 모든 이민 단기동결을 희망했다.
이러한 여론속에서 호주내 아시아인들이 계속 수난을 당하고 있다.지난달에는 호주군과 훈련중이던 싱가포르 군인중 일부가 현지인에게 구타당한 사건이 발생,시드니 모닝 헤럴드 1면톱을 장식했다.AFP통신은 10일 멜버른 빅토리아기술대 조 사를 인용,대만유학생 절반이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사태전개에 대해 주로 경제적 이해때문에 아시아의 일원임을 자처하는 호주 정부는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백호주의는 이미 끝났다는 것입니다.한 사람만(헨슨)의 의견일 뿐이지 어디 호주 정부의 입장인가요.』 피터 로 주한(駐韓)호주부대사의 말이다.그는 그러면서 8월 뉴사우스웨일스 린제이지역 의원보궐선거를 예시했다.이 선거에서 외국인 이민을 반대하는 한가지 정책만 내세운 이민반대당 후보가 6% 득표에 그쳤는데 이는 호주인들의 전반적 의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4세때 이민간 제임스 최 서기관은 『호주에서 백호주의라는 말 자체가 없어진지 오래』라 며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심상치 않자 급기야 호주는 지난달 비차별 이민정책을 재확인하는 의회동의안을 가결시켰다.총리와 각료들의 해명도 이어졌다.『소수민족의 기여를 생각지 않고는 호주의 성장을 생각할 수 없다』(하워드총리),『피부색 에 따라 사람을 배척하는 것이 얼마나 비도덕적인가.호주의 장래는 아시아에있다』(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라며 사태수습에 나섰다.
외무부의 하태윤(河泰允)서남아대양주과장은 『일부 극우 백인의논리일뿐 호주는 아시아의 공헌을 인정한다』며 『그러나 아시아인이민이 워낙 많다보니 반(反)아시아 감정이 팽배해 전혀 우려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지난 3월 자유당의 하워드총리 등장이래 이민쿼터 1만명 감축,사회보장 유예기간(2년)설정등 이민정책에 심상찮은 변화가있다고 보는 호주 한국대사관의 한 서기관은 『사태추이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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