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드라마보다 싸~하게 ‘패러디 동영상’ 의 진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요즘 뜨는 TV 드라마에는 모두 ‘이것’이 있다. 이것이 많은 드라마일수록 인기작이라고 보면 된다. 이것은 드라마 홈페이지는 물론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심심찮게 검색된다. 이것을 만드는 사람은 해당 드라마에 빠진 네티즌이다. 물론 자발적이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요, 시킨 것도 아닌데 이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생긴다. 이것 덕분에 드라마는 인터넷 세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것은 ‘패러디 동영상’이다.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신세대가 TV 드라마를 갖고 논다는 건 이미 많이 알려진 얘기다. 2003년 ‘대장금’ 이후 드라마 주인공을 영화 포스터에 합성하는 패러디 포스터, 드라마 주요 장면을 캡처해 말풍선을 다는 드라툰(드라마+카툰) 만들기는 흔한 일이 됐다. 드라마 속 인물이 뜨면 당장 가상 미니홈피가 만들어진다. 2006년 유튜브로 동영상 UCC 열풍이 분 이후에는 동영상으로 한 차원 진화해 요즘 드라마 패러디 세상의 대세는 단연 동영상이다. 드라마 장면을 다른 영상과 합성하거나 엉뚱한 음악이나 목소리를 입히는 식이다.

최근 2만이 넘는 폭발적 조회 수를 기록했던 동영상은 MBC ‘베토벤 바이러스’를 패러디한 ‘똥덩어리 바이러스’다. 주인공 강마에(김명민)가 ‘똥!덩!어!리!’라고 말하는 장면을, 정희연(송옥숙)의 ‘내가 왜’라고 외치는 대목 등 드라마의 다른 장면과 맞물려 반복적으로 배치하면서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인기에 힘입어 6탄까지 나왔다. 건우(장근석)가 지휘하는 장면과 테크토닉 음악을 절묘하게 버무린 ‘장근석 지휘토닉’도 못지 않은 인기다.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합창교향곡을 연주하는 대목과 ‘대지의 항구’를 합성한 ‘베바 트로트 버전’도 있다.

최근 다음 tv팟 등에서 검색되는 ‘바람의 화원 패러디 포스터 10종’은 조성모의 타이틀곡 ‘바람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해, 네티즌 여러 명이 만든 패러디 포스터 10가지가 파노라마 식으로 흘러가게 만든 동영상이다. ‘놈놈놈’에서 따온 ‘그지 같은 놈 이쁜 놈 콩알만 한 놈’등 포스터마다 웃음을 자아낸다. 원더걸스 ‘노바디’에 정향(문채원)이 윤복(문근영)을 부르는 ‘화공’이라는 대사를 어조별로 절묘하게 입힌 일명 ‘닷냥송’은 이미지를 전혀 쓰지 않았는데도 호평을 받고 있다.

SBS ‘바람의 화원’을 영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 포스터를 이용해 패러디했다. 최근 인터넷에 돌고 있는 ‘바람의 화원 패러디 포스터 10종’중 하나다(사진 上). 아래는 MBC ‘베토벤 바이러스’의 패러디 동영상 ‘똥덩어리 바이러스’(제작 드라쿨라)와 ‘거장 강마에’(제작 공갈만)다. ‘똥덩어리 바이러스’는 6탄까지, ‘거장 강마에’는 2부까지 제작됐다.

◆패러디 고수, 방송사에서 모신다=방송사 입장에서는 드라마 홍보를 알아서 해주는 패러디 고수들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MBC는 ‘이미지 공작소’, SBS는 ‘이미지 공작실’이라는 이름으로 드라마 홈페이지에 패러디의 장을 만들어 놓은 지 꽤 됐다.

SBSi 송정현 차장은 “패러디 작가들은 네티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노출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본능을 발휘할 자리를 마련해준다. 홈페이지에 모집 공고를 내거나 괜찮은 작가가 있으면 연락한다. 패러디물이 뜰 경우 드라마의 입소문 마케팅 효과는 확실히 있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이 ‘능력자’로 칭송하는 패러디 고수들에 일찍부터 주목한 건 MBC다. iMBC ‘드라마펀’에서 현재 활동 중인 작가는 7명.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SBS와 달리 이들은 MBC로부터 고료를 받는다. ‘똥덩어리 바이러스’의 신연식(드라쿨라)씨, ‘거장 강마에 1, 2부’의 손유진(공갈만)씨, ‘김여사의 드라마 리폼’의 김나영(김 여사)씨 등이 요즘 한창 주목받는 작가들. 신씨는 2004년 ‘대장금’ 방영 1주년을 기념해 만든 잡지 표지 패러디 ‘월간 궁녀센스’를 빅히트시켰던 작가. ‘궁녀센스’를 계기로 iMBC에 스카우트돼 4년째 MBC 드라마 패러디를 하는, 이 바닥의 유명인이다. 그가 만든 ‘주몽’패러디는 ‘주몽’ 스페셜 때 방영되기도 했다.

시사 패러디 ‘헤딩라인 뉴스’ 제작에 참여했던 손씨는 ‘드라마펀’에 둥지를 튼 지 2년쯤 됐다. ‘이산’‘태왕사신기’‘커피프린스 1호점’‘크크섬의 비밀’‘에덴의 동쪽’‘베토벤 바이러스’등 그의 손을 거친 패러디물이 숱하다.

‘김 여사의 드라마 리폼’을 연재 중인 김씨는 최근 드라툰 작가 중 가장 주목받는 이 중 하나. 김 여사의 추종자들이 ‘결방사과문 편’‘귀족과 평민 편’등을 여러 게시판으로 퍼나르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주요 포털 사이트 자동검색어, 바로가기에도 올랐다. 전업주부인 김씨는 한 사이트에 올린 ‘주몽’패러디 덕분에 MBC에 스카우트됐다. SBS에는 ‘타이거JH의 카툰타짜’를 연재하는 타이거JH, ‘바람의 화원’ 홈페이지에서 ‘피터팬 증후군’을 올리는 후크선장 등이 활동 중이다. 작가들은 시청자 게시판이나 방송 모니터링 기사 등에서 드라마 속 화제가 되는 장면과 대사에 대한 정보, 작품 아이디어 등을 얻는다.

◆디지털 호모나랜스의 욕구 충족=이처럼 드라마 패러디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진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나영씨는 “예전에는 이미지를 합성하는 식의 단순 작업이 주였다. 보는 사람도 피식, 웃는 정도였다. 최근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드라마에 개입해 이야기를 새롭게 만드는 패러디가 늘어난 것 같다. 당연히 재미도 더 크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기존 콘텐트를 재구성하는 것을 즐기는 ‘디지털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사람)’의 특징이 고스란히 발현된 것이란 얘기다. 손유진씨도 “미국 드라마는 시즌제인 데다 스핀오프(spin-off: 일종의 외전)가 있어 한 드라마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데, 국내 드라마는 1회성으로 소비가 그치는 것 같아 아쉬웠다. 패러디는 그런 아쉬움을 달래고 나만의 상상력을 펼치는 제2의 창작”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디지털 호모 나랜스들은 드라마를 한 번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기 식으로 소비한다.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정덕현씨는 “요즘 대중은 멀리 있는 미디어를 끌어다 자기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TV보다 더 쌍방향 접근성이 뛰어난 디지털 도구와 만나면서 복제와 배포가 다채롭게 진행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선민 기자

[J-HOT]

▶청년백수 "먹을거리요? 일주일에 만원으로 살아요"

▶주가폭등 사이드카 발동…장중 1000 회복

▶최진영vs.조성민 故최진실 재산놓고 붙었다

▶日 TV 해설자, 높은 점수에 김연아 놀란 표정 짓자…

▶박주영, 이렇게 전망좋은 집에서 산다

▒ 중앙일보 라이프스타일 섹션 '레인보우' 홈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