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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주는 스타 남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5호 07면

일러스트 강일구

몇 년 전 무심코 TV 채널을 돌리다 화면 속의 얼굴에 눈길이 꽂혀 버린 적이 있다. 2001~2002년 KBS2에서 방영한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눈물 연기를 펼치던 어린 배우 문근영이었다. 동그란 얼굴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눈이 어찌나 예쁘고 또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던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몇 년 뒤 영화 ‘장화·홍련’에서 다시 봤을 때도 이 소녀는 그 침울한 얼굴 하나만으로 영화 내내 보는 사람을 울적하게 만들었다. ‘어린 신부’는 영화 줄거리도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마음으로 봤지만 그의 귀엽고 발랄한 노래와 표정 하나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랬던 듯, 그는 이후로 ‘국민 여동생’의 반열에 올랐다.

문근영을 보면 스타는 하늘이 내린 것, 혹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인가 싶다. 얼굴은 최고 얼짱들의 수준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고, S라인과는 영 동떨어진 소박한 몸매에 그리 화려하지도 않은 옷차림과 성격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고 자신의 감정으로 사람을 동화시키는 마력이 있다. 무심히 보던 SBS TV ‘바람의 화원’에서도 그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을 할 때 크게 움직이는 내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는 요즘 ‘문근영 100 표정’이라는 캡처 사진이 돌고 있는데 이를 보면 단순히 그가 남장 연기와 목소리 흉내를 잘 낸다거나 애처로운 울음 연기를 잘 한다거나 하는 한두 가지 이유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울고 웃고 놀라고 기뻐하는 표정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상상컨대 그런 표정은 생활 속에서 따뜻하고 세밀한 감수성의 촉수로 세상의 온갖 감정을 꼼꼼하게 빨아들인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런 게 스타의 힘이다. 자신의 존재 하나만으로 화면 전체를 화사하게 만들고 그가 울고 웃을 때마다 수많은 마음이 기꺼이 동참해 주는 것. 그리고 그 흔한 악플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무한한 애정을 그에게 자발적으로 쏟아 붓게 만드는 힘.

한편으로 MBC TV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을 보면 스타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남도 아니고 타고난 화사함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배우는 그러나 드라마를 거듭하면 할수록 새로운 성격을 창조하며 자신만의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초반기 약간 뒤뚱거리는 듯했던 드라마는 ‘강마에’ 김명민의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마치 회오리 폭풍을 일으키는 것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완벽을 추구하느라 주변 사람들과 타협하지 못하고, 그런 데서 삐죽삐죽 솟아나는 불협화음 속의 코믹함, 강한 보호막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외로움과 나약함 같은 세심한 연기의 결들을 놓치지 않고 전달하는 그는 제대로 된 연기의 정수를 보여주며 사람들을 감탄케 한다. 어떤 드라마에 등장하더라도, 어떤 캐릭터를 맡더라도 ‘볼 만한’ 연기를 펼쳐 줄 것이라는 믿음이 그에게는 있다. 아마도 캐릭터에의 엄청난 몰입으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 그의 연기 속에서 그의 일상이 얼마나 강한 절제와 노력으로 이뤄졌을까가 미루어 짐작된다.

아무튼 두 스타 때문에 주중의 밤이 바빠지고 즐거워진다. 스타란 하늘에서 내려온 축복덩어리일 수도 있고 부단한 자기 수련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스타는 우리가 그들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아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filmpoo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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