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귀순 허창걸씨 父女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 3월 북한을 탈출,중국을 통해 귀순한 許창걸(47)씨 부녀는 11일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 주민생활 실태와 전쟁준비 상황등을 소개했다.許씨는 북한이 대남 공격준비를 하는 한편 준전시상태 선포를 대비,93년부터 각 가정.학교.기 업소.기관별로 산비탈등지에 3 깊이의 「ㄱ」자 형태의 방공호를 구축했으며특히 학급별로 1개의 방공호가 준비됐다고 밝히기도 했다.또 지도총국 산하에 14개 여단으로 편성된 「속도전 청년돌격대」가 있으며,돌격대가 최근 주둔지 인근의 협동농장에서 가축이나 농작물을 수시로 절취해 주민들 사이에서는 「도적대」로 통한다고 증언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허창걸 -왜 금순씨만 데리고 귀순했나.다른 자녀도 있는데.
『함께 귀순할 만한 조건과 환경이 안됐다.압록강이나 휴전선 부근을 가려면 특별통행증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구하지 못했다.
특히 압록강지역은 경계가 삼엄해 모든 가족을 데려오는게 불가능했다.다만 큰딸은 고등중 졸업반으로 사회 진출을 앞두고 있어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귀순 동기는.
『안전요원들의 무지막지한 천대와 멸시 때문이다.지난해 가을 문덕군영남리의 협동농장에서 아는 사람들과 술을 나눠 마셨다.이술이 빼돌린 옥수수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 들통나 1개월 강제노동을 하게 됐다.이때 안전원들로부터 말못할 수 모를 당했다.
게다가 94년12월 사로청 속도전돌격대에서 제대한뒤 문덕군 군당에서 직무배치를 받으려고 했으나 자리가 없어 1년동안 실직상태로 있었다.배급을 타기 위해 아는 사람과 짜고 가짜 「복무증명서」를 발급받았는데 이 사실이 들통 날까 두려웠다.』 -탈출경로는. 『지난해 3월 위조 공민증을 만들어 자강도 성간까지 화물열차를 타고 갔다.이틀을 걸어 압록강에 도착,18일 오후9시쯤 야음을 타 중국으로 넘어왔다.그러나 중국에서도 탈북자들을체포하려는 안전원과 보위요원들이 많아 결국 남조선 귀순 을 결심했다.』 -북한주민들의 전쟁에 대한 반응은.
『주민들은 전쟁이 일어날 것을 내심 바란다.나이 든 사람들은누가 이기든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 젊은 사람들은 전쟁이 나면 무조건 이긴다고 여긴다.주민들은 전쟁이라도 터지면 전쟁예비식량이라도 배급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다.』 ◇허금순 -북한 학생들의 군사훈련 실태는.
『고등중 4,5학년쯤 사로청에 가입한뒤 예비 전투부대인 붉은청년근위대에 참가한다.학교 인근의 야영소에서 군대와 똑같이 기초 군사훈련을 받는다.또 매달 15일에는 AK소총을 지급받아 사격훈련을 한다.5,6학년때는 철조망 뛰어넘기.밧 줄타고 오르기등 국방체육을 받고 한달에 한번씩 새벽에 비상소집훈련을 받고산 정상까지 행군하는 훈련을 한다.』 -북한 청소년 범죄는.
『고등중 5,6학년 남학생 사이에서 담배와 술.패싸움.연애사건등이 빈발한다.지난해 6월에는 「학생들의 불량행위를 없앨데 대해」라는 김정일의 지시 문건까지 나왔을 정도다.
-북한에서는 어떤 절차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나.
『북한에서는 공부가 하고싶어도,능력이 있어도 성분이 나쁘면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나 자신도 성분차별 때문에 공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남조선에서 내가 하고싶은 공부를 해보고 싶다.』 -아버지가 탈출하자고 할 때 어떤 심정이었나.
『처음에는 전혀 동조하지 못했다.조국을 배반한다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까지 들었다.또 북한에서 계급교양을 통해 남한에 대해나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최상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