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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디터 칼럼

금융위기 이후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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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주가지수 1000이 무너졌다.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이젠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아무래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오는 것 같다. 사실은 그때보다 더 심각할 것이란 우려도 많다. 당시는 아시아 몇몇 국가의 위기였을 뿐이다. 미국을 포함한 다른 선진국은 멀쩡했고, IMF라는 든든한 보루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경제의 뿌리인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다 함께 흔들리는 마당이다. 금융위기의 진앙은 거기였지만 그 쓰나미는 결국 한국 같은 나라들에 밀려올 게 뻔하다. 걱정을 안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상은 많이 변할 것이다. 1929년 미국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하다는 이번 사태가 경제만 바꿔놓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촌의 국제질서와 정치·외교도 다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우선 다음과 같은 것들이 이미 논란이 되고 있다.

①일방주의(Unilateralism)=부시 미국 대통령과 네오콘(neo-con)의 사고방식이다. 지구촌의 정치·경제와 사회질서를 총괄할 유일한 세계경찰이 미국이라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는 그걸 ‘웃기는 얘기’로 만들어 버렸다. 세계 금융질서의 교란이 미국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미국을 대신할 나라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지적은 맞다. 하지만 미국도 혼자 으스대긴 힘들 것이다.

②월스트리트 사람들=이 머리 좋은 친구들이 세상을 갖고 놀았다는 증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아주 복잡한 수식을 앞세운 금융 파생상품을 만들어 일거에 억만장자가 되는 걸 당연시하던 부류다. 성실하게 일하며 뭔가를 생산해내던 제조업자들은 이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최근 미 의회 청문회에선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직원들의 e-메일이 여러 개 공개됐다. 부실을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빨리 돈 벌어 튀자는 내용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 열 받은 정도를 볼 때 앞으로 월스트리트에서 장난치는 건 한동안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③시장 만능주의=시장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마술 지팡이가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물론 이번 기회를 틈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끝난 것처럼 떠들어대는 좌파 학자들의 주장은 헛소리다. 시장을 외면했던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이미 다 망했다. 하지만 21세기 시장에선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대신 탐욕과 기만으로 뭉친 ‘숨어 있는 손(Hidden Hand)’이 얼마든지 사기극을 펼 수도 있다는 게 드러났다. 그에 대한 합리적 규제의 필요성과 함께.

④흥청망청 행태=‘공짜 점심은 없다’는 오래된 격언의 의미가 다시 확인됐다. 은행 빚으로 집을 서너 채씩 구입하고, 주식과 펀드에 투자해 부자가 됐다고 기뻐한 건 거품에 불과했다. 누가 뭐래도 건강한 부(富)를 만드는 최상의 방법은 열심히 일하고, 아껴서 저축하고, 합리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적당히 가려서 먹어야 한다. 재산을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건 다 한가한 소리고, 문제는 올 연말부터다. 금융위기가 곧바로 실물경제로 밀어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융업계에서는 내년에 25만 명 정도가 직업을 잃을 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 대기업들에서도 감원 태풍이 몰아닥칠 전망이다. 우리에게도 ‘경제 겨울’의 한파는 곧 닥칠 것이다. 대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전문가도 아닌 마당에 경제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단지 정치권에 다음과 같은 당부를 드리고 싶다.

우선 이명박 정부. 미국산 쇠고기 협상 과 촛불시위 대응 때 드러난 그 무능함에 대해 실망한 국민이 많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이후 보여준 역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본전이 다 드러났다. 야당과 국민이 등을 돌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현 정부다. 그러니 진심으로, 그리고 겸손하게 협조를 요청하길 바란다. 특히 경제팀은 이 정책 저 정책 발표하면서 함부로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더 큰 사고를 칠까 봐 두렵기만 하다.

다음은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이 위기상황에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이명박 정권 잘되는 꼴 못 보겠다”면서 무조건 어깃장 놓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대한민국호가 침몰하면 여당만 죽는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대한민국 경제에 거품이 생기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누가 잘했네 못했네 하는 그런 손가락질은 다 그만두자. 그저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해서만 고민하자. 나라를 거덜 내고, 다 함께 쪽박 차고, 역사의 죄인이 되는 세대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종혁 사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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