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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미니시리즈 '화려한 휴가' 폭력성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외팔이 검객이 있다.어릴 적 부모를 원수의 손에 잃은 뒤 객지를 떠돌다 우연히 만난 고수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아 복수를 시작한다.그의 복수는 당연히 법을 어긴 것이기에 관가에서는 그를쫓는다.그러나 그는 다양한 비기를 사용해 차근차 근 적들을 해치우고 홀연히 떠난다.
수많은 소설.영화.무협지에서 다뤄진 이같은 스토리 구조를 차용한 한 TV드라마가 요즘 화제다.MBC 월화미니시리즈 『화려한 휴가』(밤 9시50분).이 드라마가 표면적으로 비난받는 이유는 주인공의 복수가 몹시 과격한데 있다.첫회에서 만 이미 일곱번의 살인장면이 등장했다.주인공의 여동생이 목졸려 숨지고 미국 건달들이 기관총으로 난사당하는데 이어 끈.총.흉기등을 이용한 주인공의 살인행각은 사실 가족용 TV 수준을 넘는 것이었다.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이에는 이」 식의,공권력에 호소하지 않고 직접 가해자를 응징하는 복수방법이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치정등이 이유인 단순한 개인의 복수극이라면 이는 폭력물에 불과하다.문제는 제목(80년 광주 출동 군 작전명이 「화려한 외출」이었다)에서도 연상되듯 이 드라마가 광주민주화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데 있다.현재 당시 책임자들이 법의 심판절차를 밟고 있으나 드라마에서는 가해자들이 오히려 법을 쥐고 흔들고 있다.
이 때문에 광주민주화운동때 가족을 잃은 주인공이 가해자를 직접 응징하는 것은 폭력의 차원을 넘어 주제 전달을 위해 용인될수 있다는 입장이 적지않다.피해자의 응어리진 한을 묘사하기에는오히려 부족하다는 사람도 있다.
소설가 송기숙(전남대 교수)씨도 그중 한사람이다.
그는 제작진에 보낸 편지에서 『광주의 피해자가 겪은 아픔에 비하면 가해자에 대한 응징강도가 약한 감이 있다』며 『광주항쟁책임자에 대한 응분의 단죄를 공권력이 방기하는 상황에서 피해당사자가 가해자를 응징하는 것은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고 말했다. 송교수는 다만 마피아.야쿠자.국내 조직폭력배와 마약거래등을 내세워 활극장면을 연출한 것은 주인공의 「신성한」 응징과정을 한낱 킬러의 활약으로 비하하고 광주문제를 개인적 한풀이 차원으로 축소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그는 이 드라마 에 쏟아진 비판이 이런 과대포장된 흥미요소 때문에 주인공이 행사하는 「폭력」의 의미를 간과한데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12.12및 5.18사건 1심 재판부 김용섭(현 서울지법동부지원)판사의 견해는 다르다.
그는 『우리 형법에서는 피해자가 법적 구제절차를 벗어나 개인적 복수 차원에서 보복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있다.동기가 아무리 정당하다 해도 폭력으로 한풀이를 한다면 그것 자체가 실정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또다른 폭력 이기 때문이다.드라마적 허구나 창작의 자유를 십분 감안하더라도 공공성을 갖는 TV가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원한풀이를 내보내는 것은 큰 문제다.시청자들이 드라마의 광주해법에서 속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이는 카타르시스 차원을 넘는 법 무시의 분위기를 은연중에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옹호와 비난의 엇갈린 반응 속에서 김승수 담당PD는 『광주항쟁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이 과연 올바르냐,그르냐는 논란에 대해서는 드라마의 목소리를 뚜렷이 낼 것』이라고 말해 국가공권력에 의지할 수 없을때 자력구제가 갖는 의 미에 대해 계속 파고들 것임을 밝혔다.이 드라마가 광주문제를 흥행요소로 사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그러나 이 드라마는 폭력마저 수용하고픈 「광주」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새삼 확인시키고 있다.

<이규화.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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