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代 두 감독의 새영화 읽기-"쁘와종" 박재호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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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박재호의 영화 『화두』는 영화로 우리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전작인 『내일로 흐르는 강』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성애문제를 통해 한국현대사의 묻혀진 상처를 제기했고 문화계에 동성애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새영화 『쁘와종』에서도 그는 줄곧 『무언가 사회에 화두를 던져야한다』는 철학자적 자세로 연출에 임했다.메시지 강한 독립영화였던 전작에 비해 『쁘와종』은 영화적 표현에 초점이 놓인「이미지무비」.그러나 이미지가 메시지를 뒤덮는 흔한 감각파 영화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자신한다.
『왕자웨이나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면서 진지한 영화의 시대는 갔지 않았나하고 생각했어요.덩어리 대신 포장지만 가지고 영화를뽑아내는 능력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실제 제 영화에서도 그런촬영법이 도입됩니다.그러나 영화는 결국 철학이 근본이지요.단 활자나 말이 아닌,영상언어로 풀어내야 작품이 되는데 한국영화에는 그것이 모자라요.』자신만만하다.
불어로 「독(毒)」이란 뜻의 『쁘와종』은 도시가 품고 있는 매서운 독성을 객석에 흩뿌리는데 포인트를 둔 영화.10세때 엄마에게 버림받고 창부가 된 서린(이수아)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택시운전사 정일(박신양)이 마약에 찌든 악마같은 형사 영수(이경영)에게 쫓기며 벌이는 사랑얘기다.타락한 사람들의 밑바닥에서순수의 실체를 찾는 이런 스토리에는 으레 누아르식 연출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박감독은 반대로 발랄하고 밝은 정공적 묘사법을택했다고 한다.도시에서 절망은 현실이지 슬픔이 아니기 때문이다.현실이 감춘 슬픔은 대신 화면마다 깔리는 도시적 감성의 미장센(화면배치)에서 최대한 방출시킬 방침.
잠못이루는 정일의 쪽방 창문에 건너편 빌딩의 대형전광판이 밤마다 차오르는 장면이나 밤에 단칸방에 돌아오면 냉장고 문부터 열어두는 서린의 습관이 그 예다.제작비 3억원에 전원 무명연극배우를 썼던 전작에 비해 『쁘와종』은 제작비가 4 배가 넘고 인기배우가 주연하는 흥행영화다.철학을 펼치기에는 전자가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경제적 필요도 있었지만 어떤 환경에서건철학을 펼 수 있어야 감독이란 오기에서 영화를 맡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90년 『자유부인』이후 6년만에 상업영화를 찍어보니 치이는 일들이 너무 많아 다음번엔 대학시절부터 30대후반까지 자신과 친구들의 변화상을 그리는 독립영화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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