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정신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행복이란 주관적인 거라고, 다들 “불만이 뭐냐”고 다그쳐도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그만인 거라고,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인생 느지막이 가출을 감행한 한자 아줌마는 말했습니다. 정말 그런가 봅니다. 겉으론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친구가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는 밤을 호소하고, 인생의 고비를 다 넘기고 이젠 행복해질 일만 남은 것 같던 여배우가 홀로 우울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합니다. ‘우울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랍니다. 주가가 어떠니, 환율이 어떠니 눈만 뜨면 들려오는 암울한 뉴스 또한 우울을 부채질합니다. 그래서인지 ‘살 맛이 안 난다’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습니다.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지요. 오래 고생하지 않으려면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을바람이 유난히 가슴을 후벼 파나요? ‘내가 뭣 때문에 살지?’라는 대답도 없는 질문에 멍해지곤 하나요? 그렇다면 지금 한번 체크해 보시지요. 당신의 마음도 치료가 필요한 건 아닌지.

그런데 많은 이가 정신과 문 두드리길 두려워하고 꺼립니다. 잘 몰라서 혹은 편견 탓일 수도 있겠죠. week&이 정신과를 찾아가 봤습니다. 상담심리 전문가에게 상담도 받았습니다. 두 곳에 관한 사소한 궁금증까지 속시원히 풀어봤습니다.

글=이도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Q&A

Q 정신과 상담 비용은 얼마쯤 되나.

A 상담 시간에 따라 차이가 난다. 10~15분쯤 면담을 한다면 2만원 이하지만, 30분~1시간 상담일 땐 3만~5만원이 든다. 초진 땐 검사비용이 있어 추가로 2만~3만원을 내야 한다.

Q 치료 기록이 남는다는데 사실인가.

A 보험 처리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기록이 남는다. 이를 꺼려 비보험으로 하면 추가비용이 든다.

Q 정신과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많다는데.

A 소위 ‘신경 안정제’로 알고 있는 약의 종류는 수십 종이 넘는다. 의사는 그중에서 환자의 특성을 감안해 최대한 맞춤처방한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고, 우리가 흔히 먹는 아스피린도 마찬가지다. 부작용에 대한 걱정은 기우일 뿐이다.

Q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보험 가입이 어려운가.

A 정신과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보험 가입이 거절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상담이나 스트레스 등으로 병원을 찾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질환으로 장기 입원했거나 만성우울증으로 수년간 치료받았다면 보험사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Q 외국 영화에선 누워서 무의식으로 상담을 받던데 실제로는 없나요.

A 일명 '카우치 요법'으로, 누워서 의사의 얼굴을 보지 않고 자유연상·꿈해석을 통해 45분 이상 면담을 하는 치료법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몇 군데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신과는 보험 수가가 맞지 않아 이를 꺼린다. 치료에 보통 1회당 10만~20만원이 든다. 또 국제 공인 자격을 가진 국내 의사는 5명에 불과하고, 모든 환자에게 이 치료법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없다.

Q 심리상담소는 정신과 병원과 어떻게 다른가.

A 기본적으로 내원한 사람과의 대면상담을 통해 우울감이나 무력감이 나아지도록 돕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심리상담소는 의사가 아니라 심리학 관련 전공을 마친 후 자격증을 딴 전문상담사가 운영한다. 그 때문에 의학적 검사를 하거나 약물 투여를 결정하는 등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심리상담소를 찾은 사람 중 병원에 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는 상담사들이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기도 한다.

Q 상담심리사와 임상심리사는 어떤 차이가 있나.

A 상담심리사는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과 일대일 혹은 집단상담을 진행한다. 임상심리사는 스트레스 및 우울도 측정, 인성검사 등 심리치료에 필요한 각종 검사를 하고 이를 평가하는 일을 한다. 자격증도 다르다. 대부분의 정신과 병원이나 학교·기관의 심리상담소에서는 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임상심리사를 고용하고 있다.

Q 심리상담은 어느 정도 받아야 효과가 있나.

A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딱 잘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일반 심리상담소의 경우 보통 일주일에 한 번씩 석 달, 총 12회 상담을 기본으로 하는 곳이 많다. 이 과정이 끝난 뒤 상담을 계속할지 그만둘지 결정한다. 심리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의 ‘정서적 궁합’에 따라 치료결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따라서 상담자가 자신에게 잘 맞는지 아닌지 한두 번의 상담을 거친 뒤 결정하는 것이 좋다.


요즘 정신과는

요즘 정신과를 찾는 연령대는 10대 청소년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하다. 최근엔 경제적 문제로 상담을 신청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남편의 벌이가 안 좋아진 주부가 친구들을 보며 ‘내 팔자야’ 하는 식의 비교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하고, 대출받아 집을 산 직장인이 늘어나는 이자 걱정을 털어놓기도 한다. 60대도 30, 40대 못지않게 전문적인 상담을 원한다. 노후와 건강 걱정이 심각한 경우다. 주변에서 ‘누가 무슨 병에 걸렸다더라’는 소식에도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식에게 뭔가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남아 있다.

신경정신과 클리닉비의 윤준현 원장은 “정신과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고 도움을 구하는 적극적 의지를 보인다”며 “정신과에 대한 편견으로 고통을 외면하고 사는 이들보다 ‘정상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언제 정신과를 찾아야 할까. 우선 몸이 마음의 고통을 말해줄 때다. 내과에서 ‘문제 없음’ 진단을 받고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거나, 불면에 시달리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다. 또 평소와 달리 회사에 지각하는 일이 생기고 업무에 차질을 빚는 등 역할 수행이 정상과 다를 경우도 그렇다. 이외에도 개그 프로를 봐도 웃지 못할 정도로 기분전환이 그때그때 되지 않는다면 상담을 생각해볼 만하다. 김혜남 정신과 전문의는 “대인관계가 불편해지고, 주변에서 ‘부정적이다, 염세적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가벼운 우울증을 생각해봐도 좋다”고 말했다.

치료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정신분석은 어렸을 때 부모와의 관계가 어땠는지, 지워진 상처 등을 되살려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방법이다. 환자 스스로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의 내재를 파헤치는 치료법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에 비해 인지치료는 환자의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주는 것. 가령 지각 한 번에 스스로를 ‘게으름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번엔 아파서 그런 거야’라는 식으로 마음먹도록 방향을 제시해 준다. 같은 상황이라도 뿌리깊은 내적 갈등인지, 일상의 문제인지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 두 경우 모두 약물 처방이 동반될 수 있다.

정신과 가보니…

흐름을 끊지 않고 들어주는 의사
고민 토해내니 후련해졌다

어디를 가야 할지부터 막막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정신과 추천’을 쳤다. 몇 개 안 되는 글도 피부과·성형외과의 체험후기에 비해 구체적이지 못했다. 결국 상업광고로 올라와 있는 병원 중 한 곳을 택했다.

병원은 예상보다 환하고 산뜻했다. 아로마 향이 퍼지는 실내는 명상용 음악이 흘러나왔다. 피부 관리를 받는 에스테틱 같았다.

상담 전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심전도로 현재의 상태를 측정하는 ‘스트레스 검사’였다. 양쪽 팔목과 오른쪽 발목에 집게를 꽂고 5분간 정지 상태로 있었다. 다음엔 설문에 답했다. 지난 한 주간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 ‘편안하게 쉴 수가 없다’ ‘자주 얼굴이 붉어지곤 한다’ 같은 신체 상태를 묻는 질문과,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처럼 정서적인 부분을 묻는 내용이었다.

상담실에 들어가니 외국 영화처럼 누워 기댈 수 있는 의자는 아니지만 편안한 소파가 놓여 있었다. 캐주얼 복장을 한 의사가 직업과 결혼, 자녀 유무를 확인했다. 기자라고 밝혔더니 ‘알 만한 신문인가요’라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물었다.

먼저 검사와 설문지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심리 상태는 차분하지만 스트레스는 정상치의 3배 수준으로 특이한 경우라고 했다. 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돼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반면, 맥박 수는 빨라 긴장감이 느껴진단다. 그에 비해 설문지는 ‘남을 의식한’ 평이한 답이 많다고 분석했다.

‘어떻게 오셨나요?’ 첫 질문은 간단했다. 담담히 얘기를 풀어 갔다. 대학원 진학 같은 자기계발의 욕구가 있는 반면, 돌이 안 된 아이와 최대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대치하면서 생기는 직장맘의 스트레스였다. 어느 것도 포기하기 싫으면서 다 잘할 수 없다는 생각에 우울감이 든다고 했다. 이런 말들을 늘어놓는 동안 의사는 흐름을 끊지 않았다. 남편과의 관계, 스스로 생각하는 성취도 등 꼭 필요한 물음이 아니면 말을 삼갔다. 그러다 보니 질문하지 않은 내용도 나중엔 알아서 털어놓게 됐다.

진단이 시작됐다. 문제는 ‘양가 감정’ 이었다. 하나의 일에 두 가지 생각이 맞물려 있는 것으로, 우유부단함처럼 성격적 요인은 아니었다. 사람은 일단 결정을 하면 그것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안정을 찾지만, 이런 양가감정이 지속되면 스트레스에만 시달리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또 나이에 비해 이분법적 사고가 크다는 점도 지적했다. 시간관리를 보다 철저히 할 것, 노동 뒤엔 보상의 시간을 가질 것 등을 조언했다.

병원을 나서면서 다시 한번 상담 내용을 곱씹어봤다. 속에 뭐가 걸린 듯 답답했던 생각을 정리하니 다소 후련해졌다. ‘사고의 전환’을 숙제로 받아들었지만 해결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살짝 솟아났다.

상담소 가보니…

은은한 조명 편안한 소파
걱정 털어놓다 보니 눈물이 핑

평소 ‘우울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상태가 좋지 않을 땐,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상담을 예약하고, 혼자 그곳을 찾아가려니 마음이 더 답답해졌다. ‘과연 이런 걸로 기분이 나아질까’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선 탓이다.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 있는 H심리상담센터. 문을 살며시 여니 상담자가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아준다. 사무실 안에는 큰 책상 하나, 내담자와 상담자가 마주앉을 수 있는 소파 2개가 놓여 있다. 영화에서 보던 상담실 풍경과 비슷하다. 간단한 신상명세서를 먼저 작성했다.

상담실 조명은 약간 어두운 편이었다. 은은한 조명 탓인지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어떻게 상담을 받으러 오게 되셨어요?” 질문이 던져졌다. 요즘 몇 가지 좋지 않은 일이 겹치면서 스트레스가 많아졌다는 이야기, 친한 친구들이 최근 연이어 결혼한 탓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는 이야기 등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상담자는 나의 말에 거의 끼어들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뒀다. 중간중간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언제부터 우울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나요?” 등의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동시에 내가 하는 말의 내용과 말하는 자세 등을 상담표에 꼼꼼히 메모했다. 현재의 고민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과거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 가족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는 어땠는지 등을 이야기하던 중 몇몇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해졌다. “아, 그랬었구나” “얼마나 속상했을까”라고 공감을 담아 건네는 상담자의 반응이 감정의 어딘가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쑥스러워하는 내게 그는 “눈물이 날 땐 참지 말고 마음껏 우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예정된 1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상담자는 오늘 내가 했던 이야기들을 간단히 정리하며 “중요한 일을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심리분석이나 조언은 없었다. 단지 그날부터 매일 밤 어떤 꿈을 꾸는지, 특히 기분이 안 좋은 날엔 어떤 상황에서 기분이 나빠졌는지 꼼꼼히 분석해 보는 습관을 가져보라 했다.

다음 상담 일정을 잡은 후 다면적 인성검사 용지를 건네받고 상담소를 나섰다. 돌아오는 길엔 상담 중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아, 그건 안 해도 될 얘기였는데’ 혼자 후회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울어서 그런지 마음이 500g쯤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