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가족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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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 TV 프로그램의 대종(大宗)은 드라마고 드라마의 대부분은 가족 드라마다.우선 시청자들에게 펼쳐보이는 무대가 거의 실내고,줄거리 구성도 가족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그러나 이런드라마를 한번이라도 주의깊게 본 사람이라면 고개 를 갸웃거리게된다.가족 드라마의 본령(本領)이 과연 이런 걸까 하고.
가족 드라마를 정상궤도에서 이탈시키는 제1의 주제는 「갈등」.부부와 고부(姑婦)간의 갈등은 약방의 감초격으로 나오고 가끔껄끄러운 모녀.부자.부녀관계가 등장한다.이들이 나누는 요설(饒舌)과 가시돋친 대화는 정말 가족이 모여 시청하 기가 민망하다. 두번째 주제는 「불륜」.두 여자를 거느리는 남자,두 남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자가 많이 등장한다.최근에는 유부남 유부녀가 연애감정을 느끼고 서로 접근하는 『애인』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다 많은 논란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갈등과 불륜이 부각되는 드라마를 통틀어 가정파괴 드라마라고 평론가들은 부른다.영화에서는 폭력과 섹스의 범람이 문제되고 TV 드라마에선 가정파괴가 문제된다면 보통사람들은 보고 즐길 것이 없다.
이런 관점에서 MBC의 일요 가족극장 『간이역(簡易驛)』은 가족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여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 같다.2회째방송을 마친 이 드라마는 가족간의 갈등이 초점이 아니다.정년을앞둔 철도공무원인 홀아버지와 자녀 4명이 세상 을 살아가는 얘기다. 첫회는 이혼한 장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오는 가슴 아픈 사연이 주제다.아버지는 대학진학을 포기한 그녀를 항상 안쓰럽게 생각했다면서 손바닥만한 흑염소농장을 맡으라고위로한다.2회째는 직장일로 윗사람에게 양주를 선물하려 다 포기한 아버지와 대학 전임강사자리를 맡으려면 돈을 내라는 것을 거절한 장남이 주인공이다.두 사람은 낚시터에서 문제의 양주병을 까며 세상에서 제일 비싼 술을 먹는다고 서로를 격려한다.
이 드라마는 평범한 가정이 우리를 포위한 윤리위기 속에서도 어떻게 건강한 삶을 누리는가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파행적인 가족드라마를 거부한 방송사와 협찬사의 기획의도에 박수를 보낸다.삶의 애환(哀歡)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드라마가 언쟁과 반목으로 점철된 가족상을 TV에서 추방하는 날이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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