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페미니즘에 눌린 父權 사랑통해 푸는 모습책으로 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너희 할아버지께선 이미 많은 자리를 아빠 형제들에게 내주셨단다.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자리가 아버지라는 자리야.그리고 그자리를 이 다음에는 우리가 너희들에게 내놓을테고….』 소설가 이순원씨가 다음주에 펴낼 신작 『아들과 함께 걷는 길』(해냄)의 한 대목이다.아버지가 이 사회에서 갖는 존엄과 역할이 느껴진다.이런 아버지로 상징되는 남성의 아이덴티티가 크게 흔들리고있다.어린이들이 그려내는 가족그림에도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작게그려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좀 과격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현대는 시험관 아기와 정자은행의 출현으로 자식을 낳는데도 아버지가꼭 필요하지는 않는 그런 사회다.
요즘 남자들은 페미니즘의 위세에 한껏 눌린데다 직장에서마저도기를 펴기 어렵고 가정에서도 아내와 아들 등쌀에 활개를 펴지 못한다.이렇게 되자 최근 작가들도 남성의 정체성을 되찾는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먼저 서울시내 대형서점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는 김정현씨의 소설 『아버지』를 이야기해야 한다.우리 사회 아버지들이 겪는 애환과 좌절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주인공인 40대 역시 평소에는 가족과 직장을 위해 헌신을 다했으면서도 언제나 소외감에 시달려온 보통사람이다.그런 그가 갑자기 간암선고를 받고 삶을 마무리하면서 남몰래 아들과 아내의 장래를 위해 예금과 보험까지 꼼꼼하게 정리한다는 등의 지극한 가족사랑이 큰 줄거리다.지난 8월말 발표된 이 작품은 처음에는 4 0대들이 자기들 이야기처럼 생각하며 눈물을 뿌리면서 독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그러던 것이 지금은 주독자층이 20대로 떨어지면서 무려 20만부나 팔렸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남성의 정체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자녀사랑을 실현하는 아버지 모임」등에서 실천방안의 하나로 제시하는 자녀와 함께하는여행이 소설의 소재로도 각광받는다.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쓴 이순원씨는 특히 자녀 문제에 관심이 많은 작가로 유명하다.이 작품은 그가 강원도 대관령 꼭대기에서 아흔아홉 굽이길을 아들과 함께 걸어 내려가면서 나눈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소설속의 아버지와 아들은 강릉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새로 만든족보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그들이 나누는 가족사.인생.철학.삶의 이야기가 잔잔하고 진솔하다.어느 아버지라도 한번쯤은 자식과이런 기회를 가져봤으면 하는 욕심을 부리게 만 든다.
***몇 굽이 남았는가라는 아들의 질문에 대해 아버지는 아들의 조급함을 나무란다.『옛말에 이런 말이 있단다.게으른 일꾼 밭고랑만 센다고.밭을 매야할 사람이 밭은 안매고 앞으로 몇고랑을 더 매야 하나 하고 그것만 세는 거야.』 남성정체성의 위기는 서구에서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서 이슈가 되었다.철학소설 『소피의 세계』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노르웨이의 요슈타인 가더가부자간의 여행을 소재로 쓴 소설 『카드의 비밀』(현암사)도 다음주에 번역 소개된다.주인공인 노르웨이의 아버지야말로 현대사회의 최대 문제인 가족 해체의 위기에 놓인 인물.10여년 전 패션모델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삶을 추구하겠다고 집을 떠난 아내를 찾아 그리스로 향하는 길에 아들이 던지는 실존에 관한 질문에 아버지 가 철학적으로 대답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대 그리스의 철학을 인용해 인생의 의미를 풀어낸다.이 책 역시 『소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독일.영국등 서구 각국에서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2년전에 번역 소개된 미국 선(禪)소설가 로버트 퍼시그의 『선을 찾는 늑대』(고려원)도 사회분위기와 맞아 떨어져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작품이다.아버지가 11세된 아들과 오토바이로 미대륙을 여행하면서 물질과 정신,정신과 기계문명,이 성과 신비적체험등을 비교하면서 서구와 동양사상의 조화를 추구한다.이 작품은 지난 74년 미국에서 발표되기 전에는 1백20여개 출판사로부터 출판을 거절당했지만 지금은 미국 대학생의 필독서로 통한다.지금까지 영국과 미국에서만 3백만부 팔렸다.
지금과 같은 「과도기」가 지난 뒤 흔들리는 부권(父權)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를 잡을지 단정할 수는 없다.그러나 과거의 유교적인 권위주의가 대안이 아닐 것은 확실하다.
정명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