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원내대표의 與] 개혁·세대교체 가속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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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정책위원장으로 선출된 천정배(왼쪽에서 두번째).홍재형 의원(왼쪽에서 세번째)이 정동영 의장(左), 김원기 고문과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장문기 기자]

열린우리당이 '개혁 드라이브'를 선택했다. 개혁의 선후와 완급, 경중을 가려야 한다는 이해찬 의원의 '속도 조절론'은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이라는 천정배 의원의 강경한 개혁론에 밀리고 말았다.

천정배 의원이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11일 선출됐다. 정동영 의장과 재야 출신 김근태 원내대표의 양립 구도는 이제 鄭의장과 그의 지원을 받은 천정배 원내대표 체제로 새로 출범했다.

특히 鄭의장이 입각하더라도 당 의장 경선에서 2위를 한 신기남 의원이 새 전당대회까지 의장직을 승계하게 돼 있어 이른바 '천(千).신(辛).정(鄭)'으로 대별되는 당권파가 외견상 당을 접수하다시피 했다. 세대교체론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날 千의원의 승리에는 초선 당선자들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경선은 서로 입장이 뒤바뀐 듯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신중론을 펴야 할 당권파 측이 강경론을 폈고, 개혁 색채가 강한 김근태 원내대표 측의 후원을 받은 이해찬 의원이 속도 조절론을 제기했다.

그래서 李의원과 뿌리가 같은 당내 재야세력.학생운동권 출신 중에서도 千의원 지지자가 나왔고, 당권파 측에 의해 영입된 일부 전문가 그룹이 千의원 대신 李의원을 밀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투표 당일까지 판세를 관망하던 상당수의 초선 당선자가 막판에 千의원 쪽으로 기울면서 균형추가 무너졌다.

백원우(초선)당선자는 "초선들 사이에 새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는 욕구가 강했다"며 "특히 千의원이 언론 개혁을 강조한 것이 점수를 땄다"고 말했다.

김부겸 의원은 "(초선 당선자들이)개혁 외에는 우리 지지자들을 묶을 방법이 없다고 본 듯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비록 千의원이 당선 후 일성으로 '안정'을 내세우고 있지만 개혁 노선은 가속될 전망이다.

소장 개혁파들의 목소리도 강화될 듯하다. 정치 개혁을 비롯해 언론.사법 개혁 등도 공언한 대로 원내대표 임기(1년) 내에 가시화하려 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소 비타협적이란 평을 듣는 千의원인 만큼 이 과정에서 야당과의 대치 정국이 재연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17대 국회를 상생의 국회로 바꿀 것을 믿으나, 개혁피곤증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전여옥 대변인)이라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개혁 과제들에 대한 당내의 우선순위 논란과 이에 따른 계파 간 충돌도 쉬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전임 김근태 원내대표 측은 "이 시기에 수많은 개혁 이슈가 분출될 경우 자칫 경제를 도외시한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고 했다.

당과 청와대의 관계에선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당이 독립된 위치를 찾을 듯하다.

당 핵심 인사는 "千의원은 성격상 대통령에게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다만 청와대로서도 "당이 더 개혁적으로 나와주는 게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주고 盧대통령의 중재력을 높여줄 것"(유인태 당선자)이란 시각도 있다.

이른바 '천.신.정'그룹 내부의 역학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동안 주로 후방에서 역할을 한 千의원이 전면에 부상하면서 독자적 발판을 마련한 만큼 세 사람이 '동반자'에서 '경쟁자'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민석 기자<mskang@joongang.co.kr>
사진=장문기 기자 <chang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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