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송한 北.美접촉 성과-'진전없다''얘기잘됐다' 엇갈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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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외교부대변인이 중앙통신과의 회견형식을 통해 3일 밝힌 뉴욕 북.미 접촉에 대한 평가는 우리를 당혹케 한다.이와 관련한 우리정부의 기존설명과는 내용이나 뉘앙스에서 몇 가지 눈에 띄는 차이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관계당국의 북.미 접촉에 대한 그간의 평가는 한마디로 『별 진전이 없다』는 것.잠수함 침투사건에 대해 시인.사과등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북한 외교부대변인의 회견은 북.미간에 「얘기가 잘됐다」는 냄새가 물씬 배나오고 있다.우선 북.미 기본합의문에 따르는 경수로 제공사업을 「그 어떤 외부적 영향에 구애됨이 없이」계속 추진한다는 공약을 미국이 다시 천명했다는 언급을 들 수 있다. 경수로 제공문제에 대한 한.미 합의에는 부지조사단 파북(派北)등 실질적 건설활동은 북한이 잠수함사건에 대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한 이후에나 가능한 것으로 돼 있다.하지만 이 문안을 보면 미국이 「잠수함 침투사건에 관계없이」 경수 로 건설을 재추진키로 북한에 언질을 주었다는 뉘앙스가 짙게 풍기고 있다. 북한은 간첩으로 주장하는 미국인 에번 헌지커의 석방문제에 대해서도 「인도주의 차원에서 조.미 관계의 진전에 부합되게미국의 요구를 고려할 수 있다」는 긍정적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조.미 관계를 진전시키는데 필요한 제반문제들을 계 속 토의키로 했다고 덧붙인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이는 유해조사단의 파북(派北),미사일회담등을 추진키로 양국이 인식을 같이 했다는 의미를 은근히 담고 있다.이런 북한 외교부대변인의 언급에 대해 정부는 『북.미 접촉에서 상당 한 진전이 있는듯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며 일소(一笑)에 부치고 있다.이형철 북한 미주국장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국장(샌디 크리스토프) 밑의 부과장급(리처드 프리차트)을 만난 것을 마치 국장을 만난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도 과장(誇張)임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라는 지적이다.헌지커 석방문제도 조만간 석방하겠다는 게 아니라 또다른 대미(對美)관계 개선의 카드로 계속 구사하겠다는 의미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내막적으로 북.미간에 모종의 합의가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당장은 한국측 반발을 고려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강도 높은 대북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는 했지만 결국 그들이 의 도한 대로 한반도문제를 이끌어 가려 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여기에 한몫 한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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