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대폭락…48P 떨어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 미국의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주가가 48포인트 이상 폭락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내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아시아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10일 국내 증시에서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48.06포인트(5.73%) 떨어진 790.68로 마감해 올 들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는 연중 최고치(4월 23일 936.06)보다 15.5% 떨어진 것으로 지난해 12월 29일(792.41) 이후 4개월여 만의 최저치다.

종합주가지수가 한때 5% 이상 떨어지자 증권거래소는 오후 2시14분부터 5분간 프로그램 매매를 중단해 주가 급락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매수세력이 실종된 가운데 외국인이 이날까지 9일째 투매에 나서면서 적은 매물에도 지수는 추락을 거듭했다.

BNP파리바증권 이승국 사장은 "한국 증시가 외국인에게 너무 의존해 온 바람에 외국인이 조금만 팔아도 주가가 폭락하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다른 아시아 증시에서도 발을 빼면서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전일보다 554.12엔(4.84%) 낮은 10884.70엔으로 떨어졌고, 대만의 가권지수도 215.21(3.56%) 떨어진 5825.05까지 밀렸다. 홍콩 항셍지수는 425.26(3.57%) 하락한 11,485.5로 마감, 지난해 9월 2일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뉴욕 증시에서도 오전(현지시간) 장중 한때 다우지수가 10,000선을 밑돌았다. 독일 닥스지수(-2.6%), 영국 FTSE 100(-2.2%) 등 유럽 주가도 하락세를 나타냈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영익 박사는 "중국의 긴축정책, 유가급등, 이라크 사태의 불확실성 등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미국의 국채 가격이 오르자 국제자금이 민첩하게 미국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주식 매도자금을 달러화로 바꾸면서 이날 원-달러 환율은 지난 주말보다 12원 높은 1183.1원으로 올랐다.

증시 전문가들은 "환율 급등이 외국인 증시자금의 국외 이탈을 더욱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dongho@joongang.co.kr>

[뉴스 분석] 국제자금 아시아 이탈에 한국경제 밑천도 드러나

10일 금융시장의 동요는 국제자금의 아시아 이탈에다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악재가 겹친 결과다.

그동안 수출이 늘고 주가가 크게 오른 것은 한국경제의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우선 전 세계적인 저금리와 달러 약세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 빠져나온 달러가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로 몰리면서 주가를 끌어올렸다. 국내 주식의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말 36%에서 현재 43%로 높아졌다.

수출이 호황을 누린 것은 선진국의 경기 회복과 중국특수 덕분이었다. 원화값이 오르지 않도록 시장에 적극 개입한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도 수출 호황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중국 쇼크에 이은 미국의 금리인상설은 지금까지 수출과 주가를 떠받쳐온 외부요인을 반대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아시아로 몰렸던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자 주가는 수직 낙하했다. 국내시장에선 외국인의 매도물량을 떠받칠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 달러를 환전하자 외환시장도 요동을 쳤다.

극심한 내수부진 속에 수출이 홀로 성장을 이끌어 온 한국경제가 한계에 이르자 그동안 나타난 경기지표가 착시현상에 불과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총선 이후 정치판도의 변화에 대한 불안감과 정부정책의 불확실성도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냉각시켰다. 외국계 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외환위기 직후의 개혁은 각종 제도를 국제기준에 맞추는 작업으로 알려졌지만, 참여정부의 개혁은 좌파적 분배정책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그동안 한국경제를 부추겨온 외부요인이 다시 훈풍으로 바뀌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중국 특수에 대한 환상이 벗겨지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본격적으로 금리인상에 나선다면 아시아에 몰린 자금은 더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그동안의 통계적 착시현상에서 벗어나 한국경제의 실상을 직시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오로지 수출에만 매달리는 성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출호황과 주가급등 속에 가려졌던 양극화의 악순환을 서둘러 해소하지 않으면 성장잠재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금리인상이 본격화하고 유가가 더 오를 경우 국내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상상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정경민 기자<jkmoo@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