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명품 ‘불패신화’ 무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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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유럽산 명품 불패의 신화가 막을 내리나’.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의 세계 최고 명품 그룹들은 최근 몇 년간 유로화 상승과 세계적인 불황에도 끄떡없이 버텨왔다. 특히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도 명품 매출은 큰 폭으로 증대했다. “유럽산 명품은 불황을 모른다”는 공식이 나온 이유다.

그러나 지난달 월스트리트에서 불어 닥친 금융위기 앞에선 유럽 명품 그룹들도 속수무책이다. 세계 1위 명품 그룹인 LVMH는 지난주 3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매출 규모로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가 늘어났다. 그러나 1분기의 12%에 비하면 증가 폭이 크게 둔화됐다. 특히 9월 실적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난 게 그룹의 걱정이다.

다른 명품 업체들은 더욱 어렵다. 불가리는 최근 올해 매출 전망치를 대폭 줄였다. 구찌도 비슷한 상황이다. 구찌 관계자는 르피가로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고객들의 몸 사리기가 심하다”며“가방을 네 개 사던 고객이 세 개만 산다”고 말했다.

유럽 현지 전문가들은 “명품 업계들의 불황은 이제 시작일 뿐이며 매출이 집중되는 크리스마스에 더욱 어려운 상황이 찾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 명품 시장에 경기 침체의 불똥이 튄 이유로, 스탠더드&푸어스는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고객층이 대규모 부동산 업자들과 주식 부자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웬만한 경기 침체에는 눈도 꿈쩍 않던 이들에게도 이번 금융위기는 직격탄을 안겼다는 지적이다. “유럽에서 제조하고,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소비한다”는 명품 시장 공식이 이번 금융위기에 정확히 적용된 셈이다.

대표적인 예가 샴페인이다. 스파클링 와인 샴페인은 2000년 이후 꾸준히 소비가 늘었으나 올해는 8월까지 매출이 지난해 대비 3% 정도 줄었다. 프랑스에 이어 2위 소비국인 미국의 수입량이 22%나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품 업계 불황에도 예외는 있다. 브랜드 이미지가 튼튼한 루이뷔통은 여전히 두 자릿수 매출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5캐럿짜리 최고급 다이아몬드인 엑스트라+화이트 제품도 3년 전에 비해 2배 반 높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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