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블랙파워의 시대가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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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 15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서울시향의 공연이 있었다. 이미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리를 잡은 후라 지휘자가 입장하기만을 모두가 숨죽이며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무대 옆문이 열리며 성큼성큼 걸어나올 줄 알았던 지휘자는 뜻밖에도 전동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게다가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실은 지휘자는 흑인이었다. 그는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이동해 준비된 지휘대 위로 휠체어를 탄 채 올라섰다. 그 지휘자는 전동 휠체어의 높이를 높여 단원들과 눈높이를 맞춘 후 지휘봉을 잡고 지휘를 시작했다.

# 그날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서울시향을 지휘한 이는 제임스 드프리스트였다. 현재 미국의 음악 명문 줄리아드에서 지휘를 가르치며 오리건 심포니 명예음악감독이면서 동시에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의 종신 지휘자이기도 한 사람이다. 우리에게는 첼리스트 장한나의 지휘 선생님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흑인이며 소아마비라는 이중 장애를 딛고 일어서 레너드 번스타인 이후 미국이 낳은 최고의 지휘자로까지 평가받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가까이서 본 그의 검은 얼굴에는 지적이면서도 영적인 기운이 가득했다. 느리지만 위엄 있는 그의 손동작은 그런 느낌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 1936년 미국 필라델피아 태생인 올해 일흔두 살의 드프리스트는 스물여섯 살 되던 62년 소아마비에 걸렸다. 그리고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휠체어에 의지하며 지내야 했다. 인종차별과 신체장애의 이중 장벽은 그를 절망 속에 가두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 절망의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

# 사실 반세기 전만 해도 흑인은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훗날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한 젊은 시절의 캐시어스 클레이가 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 헤비급 복싱에 출전해 금메달을 거머쥐고 금의환향했지만 레스토랑에 들어갔다가 백인 전용이란 이유만으로 쫓겨나야 했던 때가 바로 그 시절이다.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절규에 가득 찬 연설을 하며 흑인 민권운동의 불씨를 한껏 지핀 것도 63년의 일이었다.

# 울분은 때로 세상을 바꾼다. 자기 목에 걸려 있던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에 집어던진 후 프로로 전향해 64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된 알리는 우여곡절 끝에 챔피언 벨트를 두 번 잃었다가 세 번씩이나 다시 거머쥔 전설의 복서가 됐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했던 흑인 민권운동은 64년 인종·피부색·성별·출신국가 등에 따른 각종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the Civil Rights Act)의 탄생을 이끌었다. 그리고 드프리스트는 인종차별과 신체장애의 이중 장벽을 뚫고 기어이 불굴의 의지로 드미트리 미트로풀로스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세계적인 지휘자의 반열에 올랐다. 다른 경쟁자들보다 갑절 이상 노력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룰 수 없던 일이었다.

 # 보름 남짓 후인 11월 4일이면 미국 대선의 향방이 결정된다.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도 끝낸 마당인지라 민주당 오바마 후보의 대세론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상태다. 그만큼 흑인 대통령의 출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비록 미국발 금융위기의 확산으로 다소 관심이 희석됐지만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우리 앞에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주식 시황판의 빨간색과 파란색에 일희일비만 하지 말고 면면한 역사의 흐름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제대로 봐야 할 때다. 블랙파워의 시대가 이미 왔기 때문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