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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추상화 선구자 유영국화백 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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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화가 유영국(劉永國.80)은 별로 말이 없다.그의 생각에 말은 평론가들의 몫이다.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하지만 일반 관람객들이 그의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가 그림 외에 무슨 다른 일을 한다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너무나 열심히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한 작품 한 작품에 유난히 정성을 쏟고 그래서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다른 작가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다작(多作)이 아닌 까닭은 이런 고집스런 그의 성격 때문이다.
한평생을 일관되게 이런 고집을 꺾지 않고 타협도 없이 추상미술의한길만을 걷고 있는 추상미술 1세대 작가 劉화백의 초기작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대표작 62점을 보여주는 회고전 『한국추상회화의 선구자 유영국전』이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 유학시절의 실험적인 시도가 잘 드러나 있는 나무판 부조작업을 비롯해 시기별 주요작품을 고르게 보여주고 있다.
82년 이후 13년만인 95년 갤러리 현대에서 가졌던 개인전에서는 70년대 「산」이미지 작품을 주로 선보였지만 이번 회고전에서는 60년대 작품을 많이 포함시키고 있다.활발히 개인전을열었던 70년대 작품이 마치 劉화백 작품세계의 전부인양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劉화백의 작품은 크게 6개의 시기로 구분된다.이번 전시의 출발점이 되는 첫 시기는 도쿄문화학원 유학시절인 38년부터 43년까지.劉화백이 다른 추상작가들이 구상작업을 거쳐 추상에 이르는 것과 달리 처음부터 추상으로 화업을 시작한 것 은 자유로운학풍 아래 구상과 추상이 공존했던 문화학원의 역할이 컸다.
귀국하기 전까지 「독립전」「자유전」등 재야협회의 그룹전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특히 38년에는 제2회 자유전에서 붓 아닌 나무판으로 작업한실험적인 『작품』으로 최고상을 받았다.
한국전쟁으로 없어졌으나 이번 전시에는 79년 재제작된 작품이전시되고 있다.
형태에만 주목했던 1기와 달리 2기는 「신사실파」와 「모던아트협회」등 국내 그룹전을 통해 물감.나이프를 사용해 거친 표면질감을 나타내고 부분적으로 색채 도입을 시도했던 47년에서 50년대까지다.
3기인 60~66년은 劉화백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때.64년과 66년에 각각 1,2회 개인전을 갖는등 그룹전보다 개인전 위주로 활동 했다.뜨거운 색조를 사용해 역동적인 운동감을 띤 추상표현주의적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4기는 67년부터 72년까지로 이때부터 삼각형과 격자모양등 劉화백의 상표처럼 돼버린 기하학적 형태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72년에는 산의 형상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엄격한 구성이 두드러졌던 이전의 작품과 달리 5기인 70년대에는 긴장감보다 한층 정서적으로 순화된 부드러운 작품이 주를 이룬다.산 이미지와 함께 이 시기에는 나무들도 눈에 많이 띈다. 마지막으로 80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6기 작품의 특징은작품에 작가의 사인만 있을뿐 제작연도가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장수술등 지병으로 몇년에 걸쳐 완성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11월24일까지 40일간 계속된다.02-771-2381.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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