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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아직 끝나지 않은 세계 금융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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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의 금융시장은 찐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허영의 모닥불’을 지폈고, 파생금융상품이 이스트를 제공했다. 갑은 을에게 돈을 빌려줬고, 을은 빌린 돈을 또 병에게 빌려줬다. 병이 빌린 돈으로 산 집의 값이 폭락하자 돈 떼일 가능성이 커진 을의 채권 가치가 폭락했다. 그리고 이는 또 갑이 보유한 채권의 가치를 하락시켰다. 누가 돈 갚을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자 금융시장이 마비됐다.

터진 찐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놓고 백일장이 벌어졌다. 큰 빵 만들 욕심에 이스트를 너무 많이 넣은 금융기관의 탐욕인지, 이스트 사용량 규제를 하지 않았던 감독 당국의 안이함인지, 아니면 겨울이 끝났는데도 계속 모닥불을 피워댄 중앙은행장의 허영인지를 가리는 것이 주제였다. 서점가에 예기치 않았던 호황이 찾아왔다.

그동안 미국식 자본주의의 압력에 쫓겼던 유럽의 수장들이 쌤통(schadenfreude)의 내심을 밝히자마자 유럽의 은행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상태가 좀 나아 보였던 것은 유럽 은행의 장부가 미국보다 천천히 손실을 반영하게 돼 있기 때문이지, 실상은 더 나쁘다는 얘기가 들리는가 하면, 유럽연합의 정치적 속성 때문에 통합된 정책 공조가 불가능할 것이란 소문도 돌았다. 유럽의 금융시장도 경색됐다.

외환시장에서 달러의 씨가 마르자 원화 환율이 폭등했다. 10년 전처럼 우리 은행이 망하고 선진국 은행은 멀쩡한 상태가 더 위험한지, 아니면 지금처럼 우리는 멀쩡한데 선진국 은행이 망해가는 상태가 더 위험한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2400억 달러의 넉넉한 군량미가 있으니 비상사태가 와도 몇 달은 끄떡없겠지만, 세계 금융위기가 장기화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려를 떨치기 힘들었다. 또 군량미를 지키는 장수가 영 미덥지 못했다. 맹장인 것 같기는 한데 지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세계경제의 먹구름이 가득한 가운데 정권 출범과 동시에 버렸어야 할 747패를 끝까지 들고 있었는가 하면, 시장을 리드하는 정책보다는 기업 팔 비틀기에 능숙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번 주가 시작되자 환율 불안은 거짓말처럼 해소됐다. 미국과 유럽이 동시에 강력한 구제금융 계획을 발표했고, 경제 안정을 위해 모든 정책을 동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기 때문이었다. 대기업에 대한 압력도 주효했다. 수출 대기업이 대량의 달러를 시장에 풀어놓았다. 이번엔 시장 친화성 시비가 불거지지 않았다. 선진국 금융 시장이 통째로 국유화되고 있는 마당에 그 정도는 약과로 보였다.

이제는 안심해도 될 것인가? 주요국 중앙은행이 합동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퍼붓고 있고, 예금뿐 아니라 금융기관 채권까지 정부가 보증해주는 극단적인 정책을 구사하고 있으니 금융채권 시장 경색은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있다.

지금까지 확실히 달성된 것은 선진국 정부와 국민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뿐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장과 재무부 장관은 정부가 적당한 가격으로 금융기관의 불량채권을 사들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희망을 최근까지 버리지 않았다. 문제의 근원인 주택담보대출을 인수해 상환조건을 완화해주고, 자본이 잠식된 금융기관에 자본을 투입해 국유화하는 최후의 수단까지 동원할 필요성을 이제야 받아들인 것이다. 정책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과연 의도한 대로 작동할 것인지는 아직 두고 볼 일이다.

부실 금융기관의 부채를 상각해 주거나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은 채 많지 않은 돈을 여러 용도에 분산시켜 사용한다면, 금융기관이 대출을 재개할 만큼 충분한 자본의 쿠션이 제공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량 해고가 발생하고 실물 경기가 위축되면 부동산 가격이 추가 하락하고 부실이 신용카드와 일반 대출로 확대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얇게 깔아놓은 쿠션은 무용지물이 된다.

일부 신흥 시장 국가가 부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세계경제의 유일한 희망은 신흥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이다. 이들이 흔들리면 세계경제가 불안해지고 불똥이 우리에게 튈 수도 있다. 신흥 시장에 투입된 자금은 장기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 대한 세계적 차원의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금융위기의 1라운드가 끝났을 뿐이다. 정부와 기업은 긴 시야를 가지고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위기의 파도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경제학

[이슈] 미국발 금융 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