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요인터뷰>한민족문인대회 참석 후루야마 日원로작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일본이 심상치 않다.툭 하면 식민통치의 과거 만행을 미화하려던 일본이 이제는 내놓고 전범국으로서의 자신의 역사를 「복권」시키려는 기세로 나와 피해 당사국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때마침그들의 식민지배로 말미암아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동포문학인 1백여명이 모여 국내문학인들과 함께 2~6일 한민족문학인대회를 가졌다.문학을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과 통일의 방안을모색하기 위해.이 대회에 한민족 핏줄이 섞이지 않은 사람으로는유일하게 일본 원로작가 후루야마 고마오(古山高麗雄.76)가 특별초청돼 참석했다.일제시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다 태평양전쟁에참전했던 후루야마는 그 체험을 바탕으로 종군위안부와 전쟁을 다룬 소설들을 발표하고 있으며 한국평단으로부터 「자신의 체험과 양심에 충실한 일 본 최고의 순수작가」란 평을 받고 있다.
[편집자註] -한민족문학인대회에는 선생께서도 아시다시피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문인 1백1명이 참석하고 있습니다.그중 많은 사람들이 일제치하에서 강제 징용으로,혹은 학정을 피해 유랑길을 떠난 1세의 후손들입니다.일본인으로서 이 자리에참석한 감회가 어떻습니까.
『종전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그분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유감입니다.저 개인적으로는 그것을 항상 유감으로 생각하며 작품활동을 펼쳐오고 있습니다.저 역시 그 시절 한국에서태어난 인연으로 한국을 잘 알고 있어 이 자리에 초청된 것으로압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계기는 무엇입니까.
『한국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일본인들과 마찬가지로 부모 「덕」입니다.제 부친은 식민통치 시절 의사로서 신의주로 건너와 개업하고 있었습니다.저도 그곳서 태어나 신의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무엇을 했습니까.
『교토 제3고등학교에 입학했지요.그러나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한국에 대한 식민정책과 중국 침략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다 퇴학당했습니다.그 때 한국의 작가 이병주(李炳注)씨가 고교 후배로 있었지요.
퇴학당한 즉시 군대로 끌려갔습니다.그후 필리핀.말레이시아.중국.캄보디아.베트남등을 전전하며 군대생활을 하다 종전을 맞았습니다.종전 직전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전범으로 분류돼 사이공 감옥에 1년간 투옥됐습니다.반전운동을 벌이다 군대에끌려가 전범으로 전락한 것이지요.역사의 흐름에 본의 아니게 짓밟히고 굴절.왜곡된 개인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한국태생의 작가로서,또 태평양전쟁 참전자로서 선생께서 일본의 본토출신 작가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반도나 중국출신의 일본 작가들은 당연히 자신의 태생지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유년기나 성장기에 느낀 그 혈연적 친근감을 결코 떨쳐버릴 수는 없지않습니까.그러나 본토태생 작가들에게는 그런 절절한 체험이 없습니다.때문에 과거의 식민통치나 전쟁을 관념적으로,당위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다분합니다.이것이 바로 큰 문제입니다.체험적으로 알지 못하는 작가들이 일본의 과거를 그런식으로 전후세대에게 이야기하고 가르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요.』 -선생께서는 『얼마전만 하더라도 대동아전쟁중의 종군 위안부에 관한 대단한 소동이 있었다』로 시작되는 『매미의 추억』을 『신조(新潮)』93년5월호에 발표해 많은 반향을불러일으켰습니다.무엇이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오래된 기억에 조 회하며 그런 작품을 쓰게 했습니까.
『50년이 넘어도 계속 거론되고 있는 그 문제를 저 자신 개인적으로라도,작품으로나마도 풀어보고 싶었습니다.사실 일본에서는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편견과 당위론만이 지배해왔습니다.면밀히검토해 신중히 처리하고 넘어가야할 문제인데도 너무 간단히 처리해버리려는 자세가 문제입니다.
일본은 식민통치 시절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웠습니다.모두일본 국민으로 만들고 나서 그들을 버린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징용.징집.연행돼 전장으로,탄광으로,위안소로 끌려간 한국인.중국인들을 샅샅이 조사 해 보상해 주었어야 마땅했습니다.그것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고 죄스럽습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매미의 추억』이 발표된 직후 아사히신문 93년 4월25일자에 실린 문예시평에서 50년이 지났어도 그때 그 시선과 마음으로 작중 인물과 더불어 생명을 이어가는 이 작품은 독자측에 많은 것을 상상케한다고 호평한 것 으로 알고 있습니다.작품의 어떤 측면이 그와같은 호평을 불렀다고생각합니까.
『일단 작품에서 내 체험과 기억에 충실하려 했습니다.그 당시종군위안부와 저는 일종의 유대감이 있었습니다.너도 끌려왔고 나도 끌려온 사람이라는.그 처지가 같은 인간끼리 얼마나 서로를 존중하고 아낄수 있나를 보여주며 운명에 희생된 개인이 어느 정도로 참담한가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보여주려 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습니다.』 -독도나 디아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북방 4개도서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왜 계속 나오고 있는 것입니까.
『솔직히 말해 나는 그 섬들의 내력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많은 일본인들도 영토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알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무는군요.한국의 중진평론가이자 서울대교수인 김윤식(金允植)씨도 선생의 그런 문학적 태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한국문학』93년 11,12월호에 발표한 선생의 작품에 대한 평론에서 金씨는 귀동냥으로 혹은 너절한 삼류 수준의 자료를 토대로 괴발개발 얽어놓고 소설이라 우기는 작품이 난무하는데글쓰기가 자기 인생의 실천인 선생의 작품은 문학을 종교의 경지로 생각하는 자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일본 문예지에도 번역,게재됐으니 읽어보셨겠지요.요즘 우리 작가들도 개인적 사소한 세계로 침잠하며 사소설 운운하는 말이 나오는데 사소설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생각하는 사소설은 거짓이나 허구를 가미하지 않은 진짜체험의 소설이라 봅니다.사소설의 독자는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어 부끄러움이나 양심의 가책이없어야 합니다.그러므로 작가가 산 만큼만,그 깊이만큼만 쓰여질수밖에 없습니다.말로 전달하고 싶어도 쉽게 소통될 수 없는 작가의 마음,삶의 진실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 사소설입니다.
그런 사소설만이 있는 그대로의 역사와 사회.인간의 모습을 전하고 비록 소수일지라도 독자들에게 진실을 전달할수 있으리라 믿습니다.그런 의미에서 사소설을 단순히 사적(私的)인 소설로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정치적.사회적 목소리를 의 도하지 않고,또 돈벌이를 위한 상업성을 배제한 모든 순수소설은 사소설입니다.때문에 사소설을 굳이 일본소설의 한 성향으로 보고싶지는 않습니다.한국에도 훌륭한 사소설이 많지 않습니까.』 -선생은 『한국의 현대문학』『한국현대문학 13인집』등 일본에서의 한국문학번역출판.소개에도 앞장서고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한국문학의특징은 뭐라고 봅니까.
『같은 작가로서 솔직히 한국 작가들이 부럽습니다.식민 치하,6.25동란등 기막힌 역사의 소용돌이를 테마로 삼은 한국의 소설들을 정말 훌륭하게 생각합니다.그 현실을 직접 몸으로 부대껴할말도 참 많을 것 같으니 부러울 수밖에요.거기 서 한국문학의특징도 살필수 있지 않을까요.자신이 겪고 느낀 것을 진솔하게 드러내면서도 역사.사회성을 자연스레 내포하는 그런 한국문학에 경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현실적 고통과 긴장은 문학의 영광이라는 역함수 관계가 한국문학에 그 대로 들어맞는다고나 할까요.특히 윤흥길(尹興吉)씨의 그런 작품에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도 그러한 기구한 체험을 바탕으로 10여년전부터 전쟁소설을 써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이미 『단작전(斷作戰)과 『용륭해전』등은 출간됐고 이어 『죽음의 계곡』도 탈고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고령에도 불구하고 하필 선생이 원치도 않았던 체험을 추스려 전쟁소설에 매달리고 있습니까.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일본의 젊은 세대에는 반전.평화운동이 팽배해 있습니다.그러나 그들이 전쟁에 대해 무엇을 알겠습니까.그러므로 군사대국으로나아가야 한다든지,그러니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윗세대의 말은 그들에게 공허한 관념으로만 들릴 것입니다.전쟁을 어떤 각도에서건 치른 할아버지와 손자간에 진정한 의사소통이 단절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대 사이의 단절을 진정한 체험을 통해 뛰어넘고 싶었습니다.구호나 당위론을 통한 평화운동이 아니라 전쟁의 참상을 보여줌으로써 평화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역사와 삶이 그렇게 당위론만 가지고 풀리는 것이 아니 라는 진실,때문에 평화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전쟁의 참상중에도 꽃피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평화의 실체를 젊은이들에게 안기고 싶습니다.』 ***세대단절 체험으로 극복 -한국 문학에 세대간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궁핍한 농촌과 정치적 억압의 세대에서 도시적 풍요와 민주화 시대로 넘어와 소위 「신세대 작가군」이 등장하며 세계관과 감수성에 단절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일본 문학의 경 우는 어떻습니까.
『세대 차이보다는 한사람 한사람의 세계관과 취향이 다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어느 시대 어느 세대든 말입니다.거기서 나오는문학의 다양성은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것이 역사.사회성을 지향하든,대중성을 지향하든,순수문학을 고수하 든 말입니다.
일본 문단은 각자 자신이 지향하는 문학에 충실함으로써 세대간 갈등을 잘 극복해나가고 있는듯 합니다.그러나 물질적 풍요로 인해 가난하고 순백한 마음을 잃는 문학행위만은 경계해야 된다고 봅니다.문인은 항상 궁핍한 상황에 마 음을 두어야 되는 존재 아닙니까.』 -한.일 양국의 좋은 앞날을 위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낙천적 기질 때문인지 저는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물론 과거 식민통치에 대한 빚은 일본이 갚아야 되겠지요.역사.정치적인 잘못은 저질렀지만 그러나 미움만 가지고 일본인 개개인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 니다.나라와나라 사이의 관계도 결국 국민 한사람 한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로가 좀더 개인적으로 우선 친밀해집시다.여러분들이 일본 여행에서 일본인 친구를 만나듯 제가 한국여행에서 그 좋은 한국 친구들을 대하듯 말입니다.개인간의 친밀감이 모이면 나라간 불화도 순리적으로 풀리지 않겠습니까.한국인을 존중하는 사람들도 일본에는 얼마든지 많이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