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루키시즌 마친 LA다저스 투수 박찬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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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인으로는 처음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재미동포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된 LA다저스의 투수 박찬호가 성공적으로 루키시즌을 마쳤다.박은 올해 주로 중간계투요원으로 나와 5승5패를 기록,수준급의 성적을 올리면 서 메이저리그에 단단한 기반을 구축했다.93년12월 홀로 가방 하나 달랑메고 미국 프로야구에 도전,올해 기어코 입지에 성공한 박찬호를본지 LA지사의 허종호 기자가 만나 그동안의 애환을 들었다.
[편집자註] -루키시즌을 마친 소감은.
『후회없다.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최선을 다했고,또 얻은 것이많다.얻은 것은 물론 풍부한 경험이다.첫시즌의 경험은 올해 플레이오프뿐 아니라 내년시즌에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5승5패,방어율 3.64로 첫 시즌을 마쳤는데,아쉬웠던 점은? 『물론 더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 것이다.10차례의 선발기회에서 3~4승은 더 올렸어야 했는데….선발투수는 다승,구원투수는 방어율이 중요한 것 같다.』 -올해초 노모 히데오에 이은 신인상 수상 가능성으로 떠들썩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목표를 크게 세웠던 것 같다.노모는 사실상 일본프로야구에서 5년동안 정상을 달린 베테랑으로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상대다.그러나 목표가 높았던 만큼 메이저리그에확고히 자리를 굳히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또 지금 당장은 노모에게 뒤지지만 은퇴 후 내가 더 뛰어난 투수로 기록되도록 노력하겠다.』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경기였나.
『그렇다.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특히 첫 2이닝 동안 6개의 삼진을 빼앗자 너무 들떴던 것 같다.』 -반대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생애 첫 승리를 올린 시카고 커브스와의 원정경기다.얼떨결에마운드에 올라 열심히 던졌을 뿐인데….가장 기뻤던 날인 것 같다.』 -올시즌을 통해 얻은 것이 경험이라고 했는데,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투수는 구질도 좋아야 하지만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이번 시즌에는 상대선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던졌다.「금세기 최고 선수」라는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누군지도 모른채 자이언츠구장에 들어섰을 정도다.미국에서 자란 선수라면 어려서부터 보고 들어 상당한 지식을 안고 메이저리그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나는 어느 타자가 어떤 공에 강하고 약한지도 몰랐고,계속 도망다니는 투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마지막 샌디에이고파드리스와의 경기가 좋은 예다.결승 타를 맞은 크리스 그윈에게는 볼카운트 1-1에서 체인지업을 던져 파울을 유도한 후 직구로 승부하려고 했다.그러나 대타로 나온 그윈은 체인지업을 2루타로 연결시켰다.경기가 끝난 뒤 토드 워렐(다저스 마무리투수)이 그윈은 직구에 약한데 왜 체인지업을 던졌느냐고 지적해줬다.
마운드에서 갑자기 토니 그윈(내셔널리그 타격왕)이 아닌 무명선수 크리스 그윈을 만났으니 전혀 몰랐던 것이다.』 -투구 수와볼넷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앞으로 올해의 경험이 도움이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상대를 알면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쉽고,볼카운트가 유리해지면 볼넷도 적어지고 투구 수도 적어진다.지금까지보다는 앞으로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 -경험 외에 또얻은 것이 있다면.
『자신감이다.이제는 메이저리그 타자에게 겁먹지 않게 됐다.』-언제 자신감을 얻었나.
『올해 스프링캠프때부터다.첫 2년 동안은 빗맞아도 홈런이 되는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미리 겁을 먹었다.그러나 올초엔 타자들이 내가 던진 공을 못치는 것을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자신감이 생겼다.』 -원정경기보다 홈경기에서 훨씬 성적이 좋았는데,별다른 이유가 있나.
『마음이 편하기 때문인 것 같다.또 다저스타디움은 투수에게 유리한 곳으로 유명하다.홈구장을 제외하면 개인적으론 커브스의 리글리필드를 가장 좋아한다.첫승리를 포함,2승을 거둔데다 오랜전통과 담쟁이덩굴로 덮인 외야펜스등 멋진 풍경 때문에 시카고를찾을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가장 싫은 구장은.
『「투수들의 버뮤다 삼각지대」로 불리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쿠어스필드다.틀림없이 외야플라이로 잡아냈다고 생각했는데 공이 계속 떠있다가 홈런이 되는 경우를 두번이나 당했다.』 -내년시즌엔 다저스가 노장투수 톰 캔디오티(39)를 트레이드하고 선발투수로 기용한다는 소문이 무성한데.
『나도 많이 들었던 소문이다.사실상 올초부터 캔디오티가 내게「난 늙고 연봉이 비싸서 머지 않아 트레이드될테니 내 자리를 네가 차지해서 잘 던져라」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캔디오티는 개인적으로 친정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월드 시리즈를 제패한 뒤 은퇴하고 싶다고 했다.또 내게는 「너는 메이저리그에서 2백승 정도는 충분히 챙길 수 있으니 자신을 갖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줬다.단지 아쉽다면 캔디오티는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준 고마운 선배라는 것이다.왜 내게 잘해준 선배들은 모두 떠나는지 모르겠다.오럴 허샤이저(클리블랜드 인디언스),케빈 그로스(텍사스 레인저스),짐 갓(은퇴)모두가 내게 잘해주다 금세 다저스를 떠났다.』 -동료뿐 아니라 후배들에 됐고 또 그들의 격려에 몸둘바를 몰랐다.
그러나 격려를 들을때마다 실망시켜선 안된다는 생각이 큰 부담으로 작용,오히려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물론 지금도감사하기는 마찬가지다.단지 감사한 마음만 간직할뿐 나는 내 일에만 열중한다.우선 내가 잘 되는 것이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것이고 내가 잘돼야 남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료뿐아니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잔재주부터 배우지 말고 항상 체력훈련에 열중하며 힘을 키우라는 것이다.메이저리그와 다른 프로야구의 차이점은 한마디로 힘이다.힘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자신이 키울 수도 있다.힘이 좋아야 홈런 하나라도 더 치고,투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안타를 칠수 있다.또 힘이 있어야 선수생명도 오래 간다.기술은 천천히 배워도 다 배울 수 있지만 체력은 어려서부터 항상 관리해 나가야 한다.나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뒤 체력단련에 열중했더니 이제는 고질적이던 팔꿈치 통증도 없어졌다.그 리고 가능하면 일본보다 미국 메이저리그로 많이 진출했으면 한다.』 -일본보다 미국 진출을 권하는 이유는.
『우선 자기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충분한 연습기간이 있으며 같은 값이면 세계 최고봉에서 활동해야 배울것도 많고 여러모로 좋다고 생각한다.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본은 미국에 비해 상당히 배타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미국은 이민의 나 라이다보니 일본보다 훨씬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년 시즌 계획은.
『지난 겨울 체력훈련을 열심히 했는데도 올 여름에는 힘이 부쳐 고생했다(6~8월에는 방어율이 4점대 이상으로 치솟음).고향의 가족.친구도 보고 싶지만 오프시즌에도 윈터리그에 참가해 기량을 더 닦고 체력훈련에 더 열중해서 신인상을 못 받은 대신내년엔 올스타에 선발되도록 노력하겠다.』 ◇박찬호 신상명세 ▶생년월일=73년 6월29일▶출생지=공주 ▶신체조건=185㎝,95㎏ ▶가족=부모님과 2남1녀중 장남 ▶학력=공주 중동초등-공주중-공주고-한양대 2년 중퇴 (메이저리그 일지)▶94년 1월14일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입단.계약금 1백20만달러(약 10억원),연봉 10만9천달러,계약기간 6년▶94년 4월2일 미국프로야구 사상 17번째 마이너리그 거치지않고 메이저리그 직행▶4월9일 애틀 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 첫출장.1이닝 1안타 2볼넷 2실점▶4월21일 마이너리그더블A(샌안토니오 미션스)로 추락▶10월1일 메이저리그 복귀,파업으로 출전못함▶95년 4월2일 마이너리그 트리블A(앨버커키듀크스)합류▶9월2일 다 시 메이저리그 복귀▶96년 4월12일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첫 선발승.5-0.
허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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