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아기 모습에 회사이름 공개 결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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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호 14면

바펀기자. 중국에서 폭로·추적 기사를 쓰는 기자를 일컫는 속어다. 인분을 퍼내듯 사회의 부조리를 청소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국의 멜라민 분유 파동 뒤엔 ‘바펀 기자’인 젠광저우(簡光洲·35·사진)라는 기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멜라민 분유 세상에 알린 젠광저우 기자

상하이 동방조보(東方早報)에서 일하는 젠광저우는 지난달 11일 “싼루(三鹿) 분유를 먹은 간쑤(甘肅)성 영아 14명 신장병 의혹”이라는 기사를 썼다. 반향은 컸다. 우선 중국의 대표 기업인 싼루그룹이 망했다. 시장 점유율 18%(전체 규모 180억 달러)인 싼루는 올해 초부터 저가 전략을 구사해 확장 전략을 펼쳤다. 싼루는 중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선저우 7호’의 분유납품업체라고 자랑해왔다. 싼루와 관련된 일자리 35만 개가 사라졌다.

국가적 타격은 훨씬 더 크다.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중화민족의 자부심을 뽐내려던 야망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멜라민 분유 파동 이후 세계 각국은 중국산 유제품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庄)시장이 면직되고, 식품안전을 책임진 국가질검총국 국장이 사직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식품안전 대책을 발표했다.

젠광저우는 요즘 중국에서 ‘영웅 기자’ ‘중국의 양심’이라고 일컬어진다. 저질 분유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한 수많은 아기를 구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8일 “멜라민 분유를 먹고 피해를 본 아이가 9만4000명에 이른다”며 “그중 1만666명이 입원 치료를 받았고 4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피해자 중 3살 미만의 영유아가 99.2%를 차지한다.

젠광저우가 의혹을 제기하기 전에도 저질 분유에 대한 소문은 파다했다. 인체에 유해한 죽·전분효소·화학약품을 섞은 제품이 유통됐다는 의혹이 잇따랐다. 4년 전 안후이성 빈곤지역에선 저질 분유를 먹고 최소한 14명이 숨졌다.

젠광저우는 “내가 보도를 처음 한 것은 아니다. 후베이·간쑤 지역 기자들이 몇 차례 보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분유 제조업체를 언급할 때 모(某)기업이라고 익명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중국 언론은 요즘 자본과 권력의 틈새에서 고전하고 있다. 젠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장경제의 물결과 언론 통제 앞에서 기자들은 선배 세대들이 가졌던 명예와 사명감을 잃은 지 오래됐다”며 “언론인은 기업 앞에 서면 피고석에 앉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젠은 왜 폭로 기사를 썼을까. 그는 “9월 9일 란저우병원 취재 시 한 살도 안 된 아이가 전신마취 뒤 수술실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싼루를 실명으로 보도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젠은 기사를 쓰기 전 법정에 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한다. 신문 기사가 난 뒤엔 부모와 친구로부터 ‘몸조심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 정부가 20세기 초 식품안전 규제를 강화한 미국의 선례를 배우기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작가 업턴 싱클레어가 1906년 쓴 『정글』에서 묘사한 상황을 의식한 말이다. 탕쥔(唐軍 )베이징공업대 교수는 “가짜·저질 식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패가망신하게 만드는 규범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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