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 ‘시네마티크’ 선보인 소프라노 신영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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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옥은 “20년 전 데뷔를 떠올리면 부모님 생각이 난다”고 했다. 키스 장면을 본 부모님이 노래를 그만두라고 성화했다는 것. 그는 “크고 작은 일을 참 많이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다”며 웃었다. [강정현 기자]

“에이, 언니 뭘 그 정도를 가지고 그래? 얼른 드레스 입어. 나랑 같이 무대에 나가서 인사해.”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소프라노 신영옥(47)은 성악가 여러 명이 나와 노래를 이어 부르는 갈라 공연에서 작은 실수를 하고 무대 뒤에 혼자 있었다. 이미 드레스도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이때 “언니 왜 그러냐”며 대기실로 씩씩하게 찾아온 사람이 한 살 아래의 소프라노 조수미다. “무대 인사할 기분도 아니었는데 수미가 자꾸 드레스 갈아입는 걸 도와준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딱 한마디 했어요. ‘옷은 혼자 입게 잠깐 나가있어’라고요.”

◆20년 전의 완벽주의=새 앨범
‘시네마티크(Cinematique)’
를 이달 초 내고 잠시 귀국한 신영옥은 스스로 “예전에는 성격이 훨씬 대단했다”고 말한다. “노래하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고 악보만 들여다봤어요. 내가 어디에서 틀렸는지 열번 스무번 넘게 다시 보는 거에요.”

1979년, 고등학교 재학 중 미국 유학을 떠난 신영옥은 “어려서부터 낯선 곳에서는 완벽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콩쿠르만 입상하고 돌아오자고 떠났다 얼결에 시작된 유학이었다. “갑자기 혼자 지내게 되면서 더 힘들었죠.”

그리고 유학 10년 만에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역으로 데뷔, 무명에서 프리마돈나로 변신했다. 내년이면 꼭 20년이다.

“목소리도, 성격도 많이 둥글어졌죠. 몸만 해도 그래요. 예전에는 성격이 워낙 예민해서 살이 안 쪘어요. 팔이 막대기 같았어요. 지금은 10kg쯤 늘었어요.”

◆겸손함 일러준 세계 무대=화려한 데뷔 후 그는 93년 어머니를 병으로 떠나보냈다. 캐나다에서 ‘리골레토’에 출연하던 중 소식을 들었다. “막내 딸이 행여 노래를 못할까봐 아프다는 것도 전혀 알리지 않으셨어요. 노래와 삶,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한다는 걸 그때 아프게 느꼈죠.”

최근 세계 성악계의 판도도 그를 겸손하게 만든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오페라 무대는 갈수록 젊은 사람, 샛별을 원해요.”

신영옥을 스타로 만들었던 메트로폴리탄이지만 현재로서는 앞으로 몇년 동안 오페라 작품에 그를 캐스팅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거에요. 제 성격도 따라서 내추럴해져요. 이제는 어디가서도 단점을 스스로 막 얘기해요. 소리도 작고 테크닉도 부족하다고요.” 새 앨범
‘시네마티크(Cinematique)’
에도 세월에 깎여 편안해진 음성이 담겼다. 영화 ‘미션’ ‘인생은 아름다워’ 등에 흘렀던 음악 13곡이다. 

김호정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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