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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태풍남의일아니다>1.방황하는 퇴직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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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기업들이 경영난 타개를 위해 감량경영에 속속 나서면서 감원바람이 불고 있다.대기업은 물론 일부 중견기업에까지 바람이 확산되면서 「실업 신드롬(증후군)」으로 이어지고 있다.현재의 경제난이 경기침체라는 경기순환적 측면보다 경쟁력 약화 라는 구조적.근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은더한다.기업들의 감원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어서 그 사회적 파장은 적잖게 우려된다.실직자들이 겪는 고통,그리고 이들을받아들이는 사회의 재취업여건.창업제 도등에 관한 실태와 문제점등을 5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註] H그룹 기조실에 근무하다 입사 3년만인 이달초 퇴직한 權모(32)대리는 전화공포증에 걸려있다.낮시간에 처가나친지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가 『왜 집에 있느냐』는 질문을받는게 두렵기 때문이다.『월차휴가다』『서류 가지러 왔다』고 둘러대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이젠 아예 전화를 받지않는다.權씨는 조만간 새 직장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아직 집사람외엔 실직사실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노동부.경총등 구직기관들을 여기저기 다녀보았으나 시간은 흘러가는데 「직장구하기 」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만 새록새록 깨닫고 있다.그가 받은 퇴직금은 고작 3백만원.아무 일도 새로 할 수 없는 돈이다.
또 영어나 컴퓨터에 능통하지 못하고 변변한 자격증도 없어 오라는 데가 없는데다 영세업체는 사세.월급수준.업무 스타일등 때문에 내키지가 않는다.그는 『저녁때 친구나 선배를 만나면 「네가 무슨 돈이 있느냐」며 술값을 계산하는 것이 자 존심이 상해사람 만나는 것도 꺼려진다』고 말했다.
지난달말 제약회사 중역에서 졸지에 실업자가 된 李모(57)씨는 요즘 바깥출입을 완전히 끊은채 집안에서 책을 보며 마음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30~40대 퇴직자들보다는 그래도 낫다고위로하면서.그에게 가장 큰 걱정은 큰 아들의 혼 사가 눈앞에 닥쳤는데 번듯한 명함이 없는 것.『1~2년만 어떻게든 더 참을걸』하는 후회도 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돈 있으면 골프,돈 이 없는 것.『1~2년만 어떻게든 더참을 걸』하는 후회도 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돈 있으면 골프,돈 없으면 등산.』요즘 실직자들의 대표적인풍속도가운데 하나다.
16일 오전 서울구기동 북한산 어귀.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산을오르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양복차림도 가끔 보인다.이들중 인근 주민이나 운동을 하러온 사람은 거의 없다.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산을 찾은 중년 실직자들이 대부분이다. 『민주산악회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섬유업체 부장을 지낸 뒤 실업 5년째라는 柳모(47)씨는 『실직한 친구들끼리 아예 등산모임까지 만들어 등산복.등산화까지 다 장만했다』며『대통령도 어려울때 산행으로 심기를 다졌다는 데에 위안을 삼고있다』고 말했다.
그는 『별 일 없으면 1주일에 두세번은 산을 탄다』며 『실업자생활 초기엔 나같은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최근 들어선 부쩍 는 것같다』고 말했다.
국내 50대그룹에 드는 H사에서 20년간 기능직으로 운전하다지난달 명예퇴직한 金모(50.인천시송월동)씨.그는 요즘 오전3~4시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직장에 다닐 때는 출근시간에 맞춰 오전7시에 일어나는 것도 그렇게 고역일 수가 없었지만 정작 실직해 할 일이 없어진 뒤엔오전4시30분쯤 집을 나서 인천 자유공원에 올라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7시쯤 집에 돌아와 최근 남의 집 허드렛일을 다니기 시작한 부인과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내보내고 혼자 아침을 차려 먹는다. 『2~3년전부터 회사가 어려워 조기퇴직설이 나돌았어요.
물건이 안 팔려 재고가 쌓이면 생산을 중단하는 바람에 놀면서 월급받은 적도 있었습니다.때문에 「오래 견디기 어려울 것같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이렇게 갑자기 당할까 했었지요 .』 金씨는 『회사에서 전격적으로 명퇴(명예퇴직의 준말)를 실시하면서 퇴직금을 50~1백%씩 더 주겠다고 해 퇴직후에 대한 아무준비도 없었지만 그냥 받아들였다』며 『한푼이라도 더 준다고 할때 나가야지 회사 형편이 더 어려워지면 그 돈 도 못 챙길 것같아서였다』고 말했다.그러나 퇴직후 그를 맞아주는 곳은 없었다. 운수업체 몇군데를 알아보았으나 월급이 예전 직장의 절반에 불과한데다 번번이 나이가 문제가 됐다.주변에서 동업하자는 제의도 받았지만 퇴직금 1억원 남짓이 전 재산인데 잘못하다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결정을 내릴 수 없었 다.
그래도 3D업종을 찾아야 그나마 재취업할 수 있을 것같아 아는 사람을 통해 철제 아이빔 용접기술을 배웠으나 비가 오면 일거리가 없는등 너무 불규칙해 그만두고 말았다.지난주에는 강원도광산까지 찾아가 막장 일을 해보았으나 체력이 따 라주지 않아 이마저 포기하고 돌아왔다.
기업들이 경영난 타개를 위한 감량경영에 나서면서 퇴직자들이 양산되고 있다.지난 7월말 문을 연 한국경영자총협회의 고급인력정보센터에는 지금까지 한달 보름동안 무려 1천5백명이 구직신청을 해왔다.이중 1천4백명 정도가 이미 구인기업의 면접에 응했으나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20명뿐.
지난달 18년간 다닌 은행을 그만둔 千모(43)씨는 『아이들의 걱정어린 질문이 가위 「고문」수준』이라며 괴로워했다.국민학교에 다니는 딸이 『아빠,연금 얼마 나와』하며 꼬치꼬치 캐묻는통에 진땀을 흘려야했다.
『아빠 돈 많아.걱정하지마』하며 달랬지만 영 석연치 않다는 표정이었다.하루는 집에 놀러온 딸의 친구가 『너네 아빠는 왜 집에 계시니』하고 묻는 것을 방안에서 듣곤 千씨는 『오래 놀긴힘들겠구나』며 한숨 지었다.
퇴직하면 한푼이라도 아껴쓸 것같지만 마음같지 않은게 소비다.
한번 늘어난 소비수준은 쉽게 사그라들줄 모르기 때문이다.
邊모(45)씨는 지난해 이맘때 명예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과 명퇴수당등 3억원을 일단 은행에 넣어뒀다.생활비를 이자로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실업자 생활 1년만에 원금마저 야금야금까먹기 시작했다.생활비.용돈.학비등 옛날 쓰던 가락은 그대로여서 은행이자 2백50만원으로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국책은행 차장을 지낸 진모(56)씨는 7월말 27년간 몸담았던 은행을 떠나며 명퇴수당을 합쳐 퇴직금 2억8천만원을 받았다.정년이 2년 더 남았으나 미련을 두지않았다.은행에서 퇴직 강요등도 전혀 받지않았다.그는 내년초 전 재산(주택 6억원등 10억원)을 처분해 캐나다로 이민간 뒤 남은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이런 경우는 그러나 흔치 않고 대부분 실직자들은 재취업.
창업의 높은 문턱앞에 망연자실한채 가슴속 가득히 외로움을 간직하며 살아간다.노동부.중소기업진흥공단.생산성본부등 창업지원관서,경총등 구직기관,은행의 창업설명회등 요즘 재취업기관 .모임마다 명예퇴직부터 공장폐쇄.인력재배치.한직발령등 다양한 방법으로거리에 내몰린 전직 샐러리맨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주로 40~50대인 이들은 70~80년대 산업역군들이다.그러나 이제 기업은 더 이상 이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일종의 「희생의 세대」인 셈이다.쉴 나이가 아닐 뿐더러 돈도 한창 들어갈 때여서 우울증.허탈감.배신감.절망감등 「실직 증후군」을 앓고 있다.
기업에선 『감원은 불가피한 생존전략』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직 당사자들에겐 인생이 바뀌는 천지개벽이다.
경기침체에 경쟁력 약화까지 겹쳐 국내 기업들의 경영난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실직자들이 겪고있는 차디찬 겨울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누구나 언제 어떤 형태로 닥쳐올지 모르는 태풍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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