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연예가] 매주 군대가는 남자, 윤인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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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윤인구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늘 비슷한 악몽에 시달린다. 바로 군대 가는 꿈! 그는 무려 10년 전, 대한의 건강한 남아로 꽉 찬 3년을 현역 육군병으로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억울(?)하게도 꿈속에서는 물론 현실에서조차 사람들이 잘 믿어주지 않는다. 당연히 면제 혹은 방위였을 것이란 추측과 함께.

"제가 정말 그렇게 보이나요? 아직도 주민번호보다 군번이 먼저 생각나요. 얼마나 힘들게 군생활을 했으면 그렇겠어요. 그 험하다는 강원도 원주에서 군복무를 했는데, 당시 편하다는 행정보직도 거부하고 훈련에서 열외가 절대 없는 운전병으로 지원했다는 것 아닙니까?"

집에서 청소 한번 안 해 봤을 것 같은 윤인구. 난생 처음 열 손가락 다 갈라지며, 손톱 밑에 기름때 빠질 날 없이 군용차 관리로 3년을 지냈다는데 덕분에 부대 밖 심부름도 몽땅 그의 몫이었다. 어느 한가로운 주말. 고참은 그에게 미션을 내렸다. 내무반원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읍내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 테이프는 물론, 플레이어까지 빌려와야 했다.

당시는 '○○부인 시리즈'가 선풍적 인기를 모으던 시절, 따끈따끈한 최신판을 어렵게 구해와 선임과 동료들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드디어 영화 상영이 시작됐다. 모두 숨죽이고 여기저기서 침 꼴깍 삼키는 소리가 아카펠라로 들리던 그때, 갑자기 문이 덜컥 열리는 것 아닌가?

"예고없이 검열이 떴어요. 그날 영화도 못 보고 모두 군기교육을 받았는데, 저는 운전병이라고 집채만한 타이어 메고 연병장을 죽도록 뛰었죠."

이 정도면 잘 때 부대 쪽으로 머리도 눕히지 않을 것 같은데, 이 남자 매주 칼날 세워 다린 군복을 입고 군대에 간단다. 바로 '청춘! 신고합니다'(KBS) MC 때문. 그런데 부대가 있는 곳이 전국 방방곡곡 산간오지다 보니 겨울엔 입이 얼고, 여름엔 벌레에 뜯긴다. 특히 수백개의 조명이 켜지면 산속의 벌레란 벌레는 다 몰려오고 멘트 할 때마다 입안으로 뛰쳐 들어오는 놈도 숱하다고. 물론, 원활한 진행을 위해 꿀꺽 삼킨 것도 부지기수다. 이 대목에서 그의 군인 정신이 빛을 발하지 않는가?

어느새 벌써 1년. 군인으로 치면 상병쯤 됐으려나? 요즘은 '워커 거꾸로 신는다'는 군인의 법칙이 MC에게도 적용되는 것인지, 그의 진행 파트너도 이영자.빈우.손미나에서 이번에 이지연 아나운서로 바뀌었다. 솔직히 부대에 가면 남자보다 여자 MC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살짝 섭섭한 마음에 굳게 다짐한 것이 있다고?

"사실, 이지연씨가 부대에 가면 전지현씨 대접받거든요? 그래서 저도 대한민국 국군 50%가 여군이 되는 바로 그 날까지! 오래 오래 진행할겁니다. 꼭이요~."

그는 조만간 간호사관학교 촬영이 잡혔다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아나운서 윤인구가 대한민국 여군에게 권상우로 인정받는 그날까지, 파이팅!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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