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액임금동결 勞使'뜨거운 감자'-임금체계의 현황과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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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30대그룹 기조실장들의 내년도 총액임금 동결 논의를 계기로 임금문제가 감원과 맞물려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재계는 『고임금이 경쟁력 약화의 핵심』이라며 『노사간 힘겨루기식 임금결정체계가 가파른 임금상승률을 낳고 있다』는 주장이다 .노동계는 이에대해 『총액임금 동결은 근로자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높은 사교육비.물가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임금수준과 임금체계의 현황.문제점등을 노.사 양측의 견해를 들어 살펴본다.
[편집자 註] ◇외국보다 임금수준이 높은가=국내 임금이 단기간에 너무 올라 기업들이 소화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정부통계에 따르면 85년이후 지난 10년간 우리임금은 4배로 뛰어1.7배가 오른 소비자물가 상승속도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경쟁국과 비교한 주요업종별 임금도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전자업종의 경우 한국 A사는 현재 시간당 임금이 11.2달러인데 반해 태국 0.7달러,말레이시아 1.1달러,영국 7.0달러,중국 0.8달러,브라질 2.8달러등이다.
자동차도 우리는 시간당 임금이 12달러로 선진국 업체(영국 로버사 12달러,미국 포드사 15달러)와 큰 차가 없는 형편이다. 재계는 이와 관련,『선진업체보다 생산성은 크게 떨어지는데임금은 계속 오르니 채산을 맞출 수가 없다』며 『고임금구조를 깨지 않고는 경쟁력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노동계는 그러나 『90년이후 제조업 실질임금(명목임금-소비자물가)상승률은 평균 8.3%로 같은기간 평균 생산성증가율 11.1%보다 항상 밑돌았다』며 『경쟁력 약화의 근본 원인은 기술개발보다 설비확장에 매달려온 기업에 있다』는 주장 (金裕善 민주노총 정책국장)이다.
또 노총 중앙연구원 어수봉(魚秀鳳)원장은 『독과점과 고성장시대에 임금을 선도해 중소기업들에까지 파급효과를 가져왔던 대기업이 지금와서 경제위기의 원인을 임금에서만 찾는 것도 문제』라고말했다. ◇월급은 올랐는데 쓸 돈이 없다=민주노총 김유선 정책국장은 『경쟁국보다 임금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단순비교는 곤란하다』며 높은 교육.의료.주택비등을 지적한다.실제로 가구당지출액중 사교육비가 20~30%선까지 이른 가운데 올해 몇몇 기업들은 유치원보조비라는 수당까지 신설하기도 했다.또 ▶정부의낮은 복지비 지출을 기업이나 근로자 개인이 떠안고 있는 현실과▶소득이 그대로 드러나 자영업자에 비해 엄격한 근로소득세 체계▶높은 물가상승률등도 기업에는 고임금을 강요하고,근로자에겐 체감수입을 줄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임금 결정 방식도 문제다=우리 임금은 노사협상 결과로서의 수준이나 상승률 뿐만 아니라 결정과정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
우선 물가.생산성등 경제변수 요인보다 노사간 힘겨루기가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경총과 노총이 해마다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중재안을 제시하는 방식에 의한 임금협상은 노.사 양측이 모두 개선과제로 꼽고 있다.
재계는 『매년 경총.노총안의 격차가 너무 커 오히려 협상을 더디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파업만은 막아야하니 기업으로선 적정수준을 초과해도 노조 주장을 상당부분 수용할 수밖에없다』는 주장.또 정치권과 정부가 조속한 타결을 종용하는 것도무시못할 요인이라는게 재계의 지적이다.
노동계는 『정부의 낮은 가이드라인과 공권력 동원등이 근로자의반감을 부르고 교섭을 지연시키는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윤종만(尹鍾萬)과장은 『한국기업은 현재 87%가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나눠먹기식 문화가 능력주의 도입을 막고 결과적으로는 경쟁력 약화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이에대해 『능력주의 임금체제를 도입하려면우선 정확한 평가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한다.또 그룹공채에 입사했으나 위상이 처지는 계열사로 배속된 사원들은 『좋은 계열사로 못 간 것만도 억울한데 월급까지 적게 받느냐』는 불만도 있다.
◇무려 1백10여종(노동부 조사)에 이르는 복잡한 수당=복잡한 수당은 기업들에 명목상 임금인상률 이상의 인건비 부담 요인인 동시에 교섭을 어렵게 하는 원인도 되고 있다.
노동계는 『임금인상 요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임금억제시책 때문에 기본급에선 못 올리니까 수당이 자꾸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목되는 노동법 개정=정부는 이같은 문제점들을 고려,▶수당을 대폭 축소해 임금구조를 단순화하고▶능력과 생산성을 반영하는연봉제 도입을 유도하며▶적정임금 상승률 산출방식을 마련하는등 임금구조 개편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사용자측은 이를 환영하며 『힘의 논리가 아닌 경제논리에 의해결정되는 합리적 임금체계가 정착되는 계기가 돼야한다』는 주문이다. 노동계도 『임금구조 개편에는 전적으로 찬성한다』며 『다만임금억제 수단으로 악용돼선 안된다』는 단서를 달고 있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되고 있다.
민병관.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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