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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연극 "결혼한 여자와 결혼안한 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극단 서전이 연장공연에 들어간 『결혼한 여자와 결혼안한 여자』(김윤미 작.박계배 연출)는 여성관객을 불러들이는 요소와 한국 페미니즘 연극의 문제를 동시에 생각케 하는 작품이다.
남성중심의 사회에 희생돼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혼여성은 정애(강명주 분)의 불행한 부부생활을 위안삼게 되고,미혼여성은 수인(김세연 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보며 안도하게 된다.
관성적인 결혼,남아선호,남편의 외도,유부남과의 연애,미혼모의낙태수술 등 TV멜로물의 주메뉴가 그들의 현실에 대한 공감과 남성에의 분노를 유발하기도 한다.
고향친구인 두 여자가 대학졸업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전업주부와독신의 각기 다른 길을 택하면서 겪게되는 심리적인 경험들을 섬세하게 들려준 점과 오늘의 시점에서 출발해 먼 과거로부터 다시거슬러 올라와 현재를 재조명한 구성력등은 탄탄 해 보인다.
또 소극장의 무대가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검은색의 스크림(반투명 천) 벽을 이용해 벽의 앞뒤를 최대한 활용,공간을 잘 분할한 점도 깔끔한 연출이었다.이런 것들이 여성관객을 이 작품앞에 끌어앉히는 힘으로 작용한듯 하다.
그러나 이 연극의 중심에 놓여있어야 할 여성의 모습이 남성과관련한 피동적 존재에 그친데다 여성자신의 의지와 행동성은 극히미미하게 비춰지는 점은 못내 아쉽다.직장을 버리고 「또 다른 직업」인 주부를 택한 정애의 선택에는 책임의식 과 자아실현의 노력이 빠져있어 남성중심의 현실과 갈등하거나 대립하지 못한다.
그저 나약하고 불쌍할 뿐이다.새로운 문제제기도,여성의 정체성회복의 전망도 없으니 관객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다가 남성에 대한 적개심과 회한의 감정을 안고 객석을 떠날 수밖에 없다.유부남을 사랑하며 고통받는 수인도 결혼안한 여자라기 보다 「결혼못한 여자」라는 편이 옳겠다.10년간을 사랑이란 감정에 끌려다니며 무력감에 빠져있지 않은가.
또한 극단적인 두 경우를 통해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려한데문제가 있어보인다.사실주의 연극의 매력은 관객이 등장인물과 함께 욕망.갈등.위기 등의 감정을 느끼며 극에 심리적인 개입을 하게 되지만 결말의 불행이나 동감한 행동에 대한 대가는 배우들이 대신 받으므로 감정적 파장이 보다 확대된다는데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픽션을 현실로 착각하는데 익숙한 우리 관객들로서는극사건들이 극단적인 결과의 모음이라는 것을 인식하기보다 관극중감정의 앙금을 오래 간직하게 마련이다.
과연 「남자를 조심하시오」라는 메시지 이외에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극적 공감을 통해 무엇을 자각하게 하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연기와 연출이 현실을 실감나게 재현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단계를 넘어설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다.
최준호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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