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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나들이] 서울 성북동 '구보다스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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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나만의 비밀로 숨겨두고 싶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기자란 직업도 망각한 채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한 음식점이 있다. 한시간 남짓한 식사 시간 동안 내내 동행한 세 사람과 번갈아가며 감탄사를 연발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 성북초등학교 초입에 있는 일식집 '구보다스시(02-744-2701)'. 수 차례 전화 끝에 어렵사리 예약에 성공해 그 집을 찾았을 땐 네 사람 모두 한숨부터 내쉬었다. 입구가 가관이다. 셔터가 내려진 건물에 에어컨 냉각기가 삐쭉 나와 있다. 장사가 안돼 억지로 가정집으로 꾸린 모양새다. '스시'란 빨간 등(燈)을 못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엉거주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다타미방에 식탁이 달랑 3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식집.초밥집의 고급스러운 모습과는 전혀 딴 판이다. 종업원이라고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주방장 겸 주인이 왔다 갔다 하며 음식을 나르고 손님을 받는다. 주방에선 주인의 어머니가 일을 돕는다고 한다.

메뉴판을 내밀며 주문하라는 태도가 영 아니다. '골라 보세요'가 아니라 '구경만 하세요'다. 1만원짜리 초밥부터 3만원짜리 특선메뉴까지 몇 가지가 있어 고민하고 있는데 대뜸 "2만원짜리로 하시죠"란다.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다.

전채요리 다섯가지(계란말이.살구.주꾸미구이.소라초회.오징어말이)가 식탁에 올랐다. "이야, 너무 귀엽다." 하나하나 앙증맞은 크기로 맞춤맞은 그릇에 담긴 모습에 한숨이 순식간에 감탄사로 바뀐다. 뒤이어 푸른 접시에 학 한마리가 '그려져' 나온다. "우와, 어떻게 이렇게…." 오징어를 회 떠서 정교하게 그려낸 것이다. 게다가 생와사비까지 곁들여진다. 다음은 뚜껑이 있는 질그릇이 신선로처럼 화덕에 담겨 나온다. 뚜껑을 열자 매콤한 와사비향이 풍긴다. "이런 음식도 있네." 바삭하게 잘 구워진 와사비 만두에 또 한번 놀란다.

일본 교토의 정원을 빼다 박은 한치 요리, 흥부네 제비집을 응용한 학꽁치회 등은 요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정도다. 파 튀김, 전복회, 관자회, 일본식 어묵은 틈틈이 입을 즐겁게 해준다. 식사로는 고깔김밥을 직접 말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준다. 게맛살.장어구이.무순.계란말이.단무지 등을 순서대로 올려 말아 먹는다. 마지막으로 진한 장국에 메밀국수가 나오는데 일본의 맛과 너무 닮았다.

"이 값에 도저히 이런 음식을 만들어낼 수 없어요. 이 집 주인은 음식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요리를 하면서 손님이랑 즐기는 겁니다." 일식집을 운영해 본 동행자의 평이다.

실제 이 집 주인은 귀여운 횡포(?)를 자주 부린다. 음식을 순서대로 내지 않고 빼먹기도 하며, 시간이 늦어지면 손님들에게 그만 가달라는 요구도 서슴지 않는다. 예약 손님수보다 인원이 많거나 적어도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미 5월 말까지 예약이 찬 상태라고. 그래도 자주 전화를 걸다보면 갑작스러운 예약 취소로 우연치않게 자리를 차지할 행운을 얻을 수도 있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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