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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미군범죄 방관해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우리 수사기관이 코앞에서 확인하고도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범인의 신분이 미군(美軍)이라는 이유때문에 신병을 확보해 직접 신문하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재판관할권까지 미군당국 과 교섭해야할 판이다.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한.미(韓.美)행정협정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7일 동두천(東豆川)에서 미군병사가 접대부인 이기순여인을 무참하게 살해한 것을 경찰이 밝혀내고도 속수무책이다.미군측 주장대로 아무리 주둔군의 편의를 위해 만든 협정이라지만 우리처럼 사법처리에 제한을 받는 나라는 없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일본이나 독일에서는 없는 일이다.
이런 불평등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지금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당장 해결될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우리가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는 행정협정개정을 미국측에서 서두를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12일까지 이틀간 계속된 개정협상에서도 별 진전이 없었다. 행정협정의 개정은 당초 목표대로 하면 지난 5월에 이뤄졌어야 했다.지난 3월 우리측이 최종협상안을 제시한데 대해 미국측이 빠른 시일안에 응답하기로 돼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제임스 레이니 주한미국대사도 협정개정이 『주일(駐日)미군 지위협정과 유사한 내용으로 5월중에 이뤄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바 있다. 그런데도 미국측은 답변을 여러차례 미루다우리의 최종협상안이 제시된지 반년이 지난 이제서야 다시 교섭에 응해 왔다.그러나 이번 교섭에서 미국측은 범인의 인도시기라든가,우리 검찰의상소권제한등 약간의 문제에서 우리측 요구를 수용한데 그치고 있다.피의자의 인권과 관련,우리의 법적 보호장치가 미국과 다르니우리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미국측이 자기네 범죄자의 인권보호는 중시하면서 우리 국민의 인명은 가볍게 여긴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그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미국측은 동두천에서처럼 흉악한 범죄자는 즉시 우리가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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