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식품 불신 확산 … 무엇을 먹어야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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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중국에서 점화된 ‘멜라민(Melamine) 파동’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해태제과 과자에 이어 4일 롯데제과 중국 현지법인과 다국적 제과기업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소비자들의 불안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식품안전 사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량 만두, 납덩이 꽃게, 기생충알 김치, 생쥐머리 새우깡, 칼날 참치캔 등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 정부와 국민이 만성불감증에 걸린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올 정도다. 식품 불신 시대에 안전한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짚어본다.

  ◆세계화된 식탁, 로컬푸드 대안 될까=서울대 보건대학원 정효지 교수는 “이미 우리의 식탁이 세계화·사회화돼 있어 가공식품을 먹지 않거나 자연재료로 식단을 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곡물 자급률이 27.7%에 불과하므로 지구촌 각국의 식품·재료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현대인의 생활패턴상 바깥에서 해결하거나 반제품을 사다 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식품이 국경을 넘어 대량 이동하는 글로벌 시대에는 안전사고도 해당 국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최창순 중앙대 교수는 “값싼 원료를 외국에서 수입한 뒤 가공해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국제교역이 빈번하다”며 “‘세계의 공장’인 중국발 멜라민 공포가 세계로 번진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멜라민 파동’ 이후 유기농 제품 매출이 늘고, 집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주부도 많아졌다. 소비자시민모임 문은숙 기획처장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얼굴 있는’ 농산물을 제철에 섭취하는 게 ‘좋은 소비’”라며 “영양이 뛰어나고, 지역경제에 이바지하고, 이동거리가 짧아 지구온난화를 줄이는 데 기여하는 로컬푸드(제 고장 먹거리)가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검역체계 강화해야=정부와 한나라당은 지난달 28일 원산지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여부를 표시하는 ‘수입식품 전면(前面)표시제’ 식품 집단소송제 도입 등을 담은 ‘식품안전+7’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멜라민 사태는 정부의 안일한 식품관리와 기업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식품사고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수입식품을 철저히 검역해야 할 정부의 대응책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외국에서 문제가 된 식품안전사고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해외식품위해 정보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포장지에 식품업체가 소비자에게 알리고 싶은 정보만 제공해 오히려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도 있다. 정 교수는 “식품위해사범은 엄격하게 처벌해야 ‘식품사고는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뿌리내리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최 교수는 “처벌보다 소비자 신뢰를 잃은 기업은 스스로 퇴출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의 식품안전 대책=건강표준표시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영국은 방사선을 쐰 식품을 수입할 경우 생산국에서 검사를 완료했어도 재검사를 할 만큼 안전관리가 잘돼 있는 나라로 손꼽힌다. 미국은 식품사고가 생기면 국가와 주정부에서 유통경로를 추적해 불량식품이 유통되지 않도록 차단하는 행정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정 교수는 “생산자 못지않게 시장의 주인이자 감시자인 소비자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대학원은 유통업체와 공동으로 ‘헬시 마켓(Healthy Market)’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건강한 식품’을 소비자들의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진열해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싱가포르는 ‘건강한 식품’을 선별해 ‘헬시 초이스(Healthy Choice)’ 인증마크를 수여한다. 정 교수는 “국가와 생산자·소비자가 건강한 먹거리 문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식품안전사고를 추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길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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