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가는길>문경 김룡사 금선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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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운달산(雲達山)이란 신라 진평왕 때 운달(雲達)스님이 수행의자리를 잡으면서 지어진 산이름이다.그러니까 운달스님은 불가(佛家)의 말로 개산조(開山祖)가 되는 것이다.해발 1천가 넘는 산이 비로소 이름을 얻었으니 운달스님의 공덕은 그것만으로도 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산 정상에 구름처럼 머물러 있는 금선대(金仙臺)는 진평왕 9년(587년)에 스님이 운달 산록 가운데 처음으로 터를잡은 곳이라고 한다.금선이란 금색선인(金色仙人)의 준말로 부처님의 별호(別號)라는 게 김룡사 주지 자광(滋曠 )스님의 설명이고. 영남 일대에서 법문 잘하기로 소문난 자광스님을 먼저 만나뵙고 암자를 오르는 것도 행운이다.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스님의 법문은 수풀을 흔드는 서풍(西風)같기도 하고,김룡사옆구리를 씻으며 흐르는 개울물 소리처럼 다정하기도 하 다.나그네의 귀에 아직도 맺혀있는 법문 한 구절은 스님이 직접 창을 뽑듯 왝왝왝!하고 흉내낸 장천(長天)을 나는 기러기 울음 소리다. 금선대 오르는 길에도 바란 것은 아니지만 보너스가 있다.
땀이 비오듯 쏟아질 무렵 화장암(華藏庵)이란 암자가 문득 나타나 쉬어갈 수 있음이다.문을 걸어 잠그고 수행하는 곳이기 때문에 문틈으로 암자 안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지만 그곳의 공기가 향기로운 것이다.돌담에 자생하는 담쟁이잎들도 눈을 청청하게 맑혀 주는 것 같고.
운달산 자체가 토산(土山)이라 산길이 스펀지처럼 부드럽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한번 더 땀으로 목욕을 하고는 암자에 다다른 것이다.김룡사에서 3㎞의 거리라고 하니 전문 등산인들도 결코 한걸음에 내닫지는 못하리라.
어느새 정오가 되어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고 있다.이런날에 스님은 어디로 출타한 것일까.햇살이 난반사하는 암자가 나그네를 눈부시게 하고,갑자기 허탈감에 빠져들게 한다.기둥에 붙어 있는 묵언(默言)이란 글씨와 아직도 사용하는 지게가 암자에서 수행하고 있는 스님의 체취를 느끼게 할 뿐이다.할수 없이 부엌으로 가 요기나 하고 하산하려 하지만 그것도 내키지 않는다.물론 밥값은 계산해 놓고 가려 해도 갈등이 느껴지는 것이다.
쌀은 몇됫박 될것 같으나,차가운 물 통 위에 뜬 스테인리스 반찬통에는 깍두기가 1인분만 남아 동동 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암자에 돌아온 스님이 공양하려고 밥을 지은 다음 반찬통을 열었을 때 비어있다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물만 마시고 하산하는 길에 나그네는 문득 한 생각에 사로잡힌다.어디에서 힘이솟아났는지 다리에 힘이 생기고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것이다.남의 마음을 헤아려 그편에 서는 것이 바로 자비심이 아닐까. 글:정찬주〈소설가〉 사진:김홍희〈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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