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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리뷰>연극 "여시아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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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올 서울연극제 첫 공식참가작 『여시아문』(장윤환 작,심재찬 연출)은 제목만큼이나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여시아문」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법어로 그대로 믿고 의심치 않는다는 의미다. 익히 알려진 두가지 소재를 이용한 이 극은 일견 진부할 수 있는 사건을 새롭게 구성하고 갈등구조를 현재화.보편화시키고있다. 춘향전과 긴급조치의 결합이 그것이다.
극의 시점은 변학도 취임부터 이몽룡의 어사출두후 춘향과의 재회까지.과정과정에 관리들의 폭정과 주민들의 고통을 삽입하는 등원작과는 다른 사건연결로 관극재미를 높인 새 춘향전을 만들었다. 여기에 한국정치사를 얼룩지게한 각종 긴급조치와 정치적 선포를 신랄하게 희화시켜 놓았다.
웃지 않으면 잡아간다는 변학도의 「경축기간」 선포는 며칠있다울지 않으면 잡아간다는 「애통기간」 선포로 제멋대로 바뀌고 백성들은 포고령에 따라 웃었다 울었다 해야한다.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감옥에 잡아넣고 석방을 구실로 돈을 챙기기도 한다. 웃지못할 관리들의 횡포가 진한 웃음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암행어사가 등장해 탐관오리를 처벌하는 것으로 극은 종결되지 않는다.이번에는 어사가 「개혁기간」을 선포한다.개혁이란 이름의새로운 권력의 시작이다.
극중 백성들의 어이없는 표정만큼이나 허탈함을 관객들은 맛보지않을 수 없다.가장 자연스러워야할 인간의 감정마저 조절할 수 있는 권력의 반복적인 제압적 성격과 이에 의해 고통받는 민중의문제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분노를 자 아내게 하는 구조다.이런 뼈대에 재치있는 말과 코믹한 연기의 살을 붙여 공연은 더 박진감있게 진행된다.
극 도입부분과 중간중간 마을 주민들의 풍물놀이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춤사위와 사물은 극의 마지막 무표정하게 기계적으로 춤을춰야 하는 민중의 모습과 오버랩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탐관오리들의 회칠 분장이나 반쪽가면을 씌워 다른 역과 구별되게 하면서 그로테스크한 성격을 드러낸 점도 흥미를 주는 장치중하나다. 사또의 의자를 거대하게 제작해 권좌의 힘을 과장해 표현해내는등 소품도 상징성과 기능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여기에 변학도의 의자보다 더 크고 웅장한 어사의 의자는 더 큰 권력을암시하고 결말의 극적 전환을 뒷받침하는 유용한 장치로 사용됐다. 이처럼 이 작품은 극적 재미와 날카로운 풍자를 겸비한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극장밖 풍물놀이를 보여주는데 그친 시작부분의 영상 처리나 비디오를 되감는 듯한 극후의 역동작들은 연출의도와는 달리 반복적인 느낌이 강해 극의 집중력과 감동을 떨어뜨린 점이 옥에 티였다.
최준호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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