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하고 당찬 얼굴 뒤에 숨은 ‘가면성 우울증’도 있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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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06면

‘마음의 감기’. 우울증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감기처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쉽게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성인 10명 중 한 명은 우울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2001년 정신질환 역학조사에서 4%였던 유병률이 2006년엔 5.6%로 높아졌다.

죽음으로 이어진 ‘마음의 감기’

우울증은 자살로 이어지기 쉽다. 일반적으로 우울증 환자의 15%가 자살을 시도하고 자살자의 60%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진실(40)씨의 경우 워낙 ‘또순이’ 이미지가 강해 우울증 환자였다는 사실 자체를 의외로 여기는 이가 많다. 최씨는 최근 출연한 방송에서도 항상 씩씩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왔다. 연예인이라는 특성상 대중 앞에서 고통을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탤런트 정다빈(당시 27세)씨가 지난해 2월 자살했을 때도 가까웠던 동료나 소속사 관계자들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명랑했을 뿐 아니라 사고 전날에도 동료 탤런트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오강섭(정신과) 교수는 “자살하기 전 고인의 심리 상태는 물론 가족 중에 정신과 병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는지를 면밀히 추적해 보는 ‘심리학적 부검’을 해 보면 자살자의 90%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자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우울증에 대한 대표적 편견 중 하나가 잘 우는 등 평소에 아주 우울한 상태로만 있을 거라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가면성 우울증(masked depression)’처럼 겉모습만으로는 우울증 여부를 판단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런 환자는 자신의 기분을 음주나 일에 집중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대신 몸이 아프다든지 기운이 떨어지는 등의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울증은 생물학적으로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뇌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생긴 뇌질환으로, 다른 정신질환에 비해 치료 효과가 높은 편이다.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5명 중 1명은 완치될 수 있다. 문제는 연예인은 제대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홍진표(정신과) 교수는 “얼굴이 알려진 스타들은 소문이 날까 봐 병원에 가기를 두려워하다 보니 적절한 치료를 놓쳐 종종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우울증은 가족력이 있거나, 신경이 예민해 쉽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나치게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인 사람이 더 걸리기 쉽지만 꼭 심리·환경적 요인만 연관이 있는 게 아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가량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 이는 여성호르몬의 변화도 한 원인이다. 오 교수는 “생리 전이나 폐경기·산후 등엔 이 호르몬의 양이나 종류에 큰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고 설명했다. 가수 패티김(70)씨도 최근 중앙일보에 연재한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50대 초반에 “공연 도중 종종 울먹일 정도로 갑자기 눈물이 많아지고 세상사가 온통 덧없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등 우울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경우는 전형적 갱년기 증후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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