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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지리기행>31.끝.지리산자락 내촌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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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춘향이 무덤이 있다.전북남원시주천면호경리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정말 번듯한 「만고열녀성춘향지묘(萬古烈女成春香之墓)」가 있는 것이다.하지만 물론 가짜다.60년대 말 「성옥녀(成玉女)」라 새겨진 지석이 나온 것이 빌미가 돼 억지춘향격으로 된 것이 춘향 무덤이다.억지춘향이란 『춘향전』에서 변사또가 춘향으로 하여금 억지로 수청을 들게 하려고 한데서 나온 말로 안될 일을 우겨 겨우 되게 만드는 일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그 춘향이가또 한번 억지를 만난 셈이다.
얘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춘향무덤을 정비할 때 이 명당비석에 이름을 새기면 발복한다는 풍문이 나돌아 지역 유지라는 사람들이 제 이름자를 비석에 넣어보자고 다투어 나서는 바람에 꼴불견을 연출했다고 한다(무등일보 백형모 기자의 말).게다가 주변은 술 마시고 춤추는 우리나라 유원지의 전형이니 성옥녀라는혼령은 졸지에 춘향이가 돼 이 무슨 봉변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터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흔히 금쟁반에 밥을 먹고 옥으로 띠를 두른다는 형세(金盤玉帶 形)의 땅인데 앞산(朝案)은마치 옷깃을 여미고 허리춤을 추스른 듯(襟帶)차분하고 요요하다. 그 앞이 지리산 국립공원의 서쪽 끝인 구룡계곡 육모정(六茅亭)이고 거기에서 계곡을 빠져나가면 만나는 첫 마을이 내촌(內村)이다.이 마을은 특이한 지세를 매우 희귀한 방법으로 설명해내고 있다.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병 목을 통해 남원으로부터들어와 병 안에 해당되는 곳이 자기 마을이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원시내에서 동림교를 건너 동쪽으로 난 730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양쪽이 절벽이고 가운데 개울이 흐르고 있다.그렇게 10리쯤 나가면 호기리 미륵정마을을 만나게 된다.마침그곳에 전에는 감나무집이라 불렸던 대림주유소가 있기 때 문에 실수없이 찾을 수 있는 위치다.그리고 여기에서부터는 상당히 넓은 산간 분지 지역이다.그러니까 미륵정을 지나면서 확 트인 느낌을 받게 된다.이 활연한 기분은 지리산 자락의 국립공원 지리산 북부관리소를 만나면서 끝이 난다.
위의 지세는 동림교 건너 계곡 초입이 병 주둥이가 되고 미륵정이 병 목이 되며 내촌마을이 병 안이 되는 한편 지리산 자락은병 바닥이 되는 꼴이다.그래서 본래 마을 이름도 지금과 같은 내촌이 아니라 안에 술이 흐른다는 뜻으로 내천(內 川)마을이었다고 한다.아마 하늘에서 내려다 본다면 꼭 그렇게 보일듯 싶다.그러나 지세를 살핌에 있어서 조감(鳥瞰)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헬기를 타고 지세를 조망한 경험이 있다.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니 산의 형세가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분명했다.따라서 이론형국론(理論形局論)에 입각한 산천 형국명(形局名)의 명명(命名)은 매우 쉽고도 편리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무엇인가 미진했다.산천의 성격을 올곧게 알기 위해서는 역시 천상(天上)의 지리학이 아니라 땅에 발을 딛고 그와 직접 교감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왕도가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게다가 헬기의 편리함과 용이함에 의해 게을러진 정신상태로 어떻게 땅과 영혼의 주고받음이 있을 수 있으랴 하는 생각에서 해본 말이다.
현대 지리학이 대축척 지형도와 항공사진, 나아가 인공위성 사진에 의해 토지를 감별하고 그를 바탕으로 각종 지표 현상을 계획해내는 일들에 인간적 체취가 없다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현상이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병 목의 안쪽에 해당하는 마을은 상식적으로도 산간 분지 지형이기 때문에 소위 피란 보신의 터(避亂保身之地)로 손색이 없다.따라서 욕심 부리지 않고 평생을 집안과 더불어 대과없이 살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명당이다.이런 곳을 『정감록』에서는 승지(勝地)라 하거니와 이곳 역시 그런 기운이 없지는 않다.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병이 바로 서있는 것이 아니라 누워있다는 점이다.게다가 그냥 누워있는 것도 아니고 병 주둥이가 아래를 향하도록 비스듬하게 누워있 는 꼴이다.병 안에 있던내용물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이는 마을의 복록(福祿)이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당연히 이에 대한 대비가 있으니 이 마을에는 그 비보(裨補)책이 무려 네가지나 된다.
***그 첫째가 짐대다.짐대는 솟대를 말하는 것으로 긴 막대기를 세우고 그 위에 주로 날짐승을 얹어놓는 형태가 가장 많다.이곳에서는 오리 세마리를 얹어놓았다.그런데 이 오리의 방향이오묘하다.즉 남원쪽을 향해 주둥이를 벌리고 궁둥이를 마을쪽 으로 향하게 한 것이다.이는 바깥의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고,남원 고을쪽에서 모이를 쪼아먹은 다음 마을에다 똥을 싸거나 알을낳으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
똥은 누런색으로 황금이자 재물이다.그런데 그 짐대로 쓸 나무를 해오는 곳이 또한 흥미롭다.바로 춘향무덤 입구 석녀골에서 베어와야 한다는 것이다.석녀골에는 여성 음부 모양의 바위가 하나 있다.그래서 이곳을 전에는 보지골이라고도 불렀 던 것이지만지금도 이 바위에서 흐르는 물빛이 보이면 마을 부녀자에게 바람이 난다 하여 소나무와 돌담으로 차단해두고 있다.노상호(79)마을노인회장의 이에 얽힌 소싯적 회고담은 저절로 웃음을 자아내는데,나무하러 가서 그 바위를 콕콕 쑤시면 마을에 상피붙는 일이 생긴다는 얘기가 있어 개구쟁이들이 몰래 그짓을 했었다는 것이다.음탕하기는커녕 해학에 가깝다.
둘째는 병 목 부근에 조성한 숲이다.많이 줄기는 했지만 지금도 숲이 볼 만하다.이는 즉 풍수가 말하는 동수(洞藪)개념과 같다.셋째는 장승의 설치다.본래 두 기의 목장승이 길 양옆을 떠받치며 서있었으나 지금은 커다란 신식 돌장승으로 모습을 바꾸고 말았다.어쨌거나 옛 풍취는 차린 셈이다.그리고 또 하나가 논 가운데 있는 돼지 모양의 바위로 이 역시 남원 방향을 바라보며 누워있다.
이렇게 하여 허결(虛缺)한 서쪽은 막을 수 있었으나 동남쪽 지리산 강기(剛氣)는 어찌할 것인가.물론 이에 대한 비보도 있다.경로당 앞에 작살봉이 있다.어찌 보면 붓끝같고,어찌 보면 불꽃같다.문필봉(文筆峰)으로도,화성(火星)의 산으 로도 볼 수있다.하지만 지리산 곡풍(谷風)이 불을 일으킬 개연성이 높으므로 대비는 그에 대한 것이 현실적이다.그래서 짐대 아래에서 음력 2월 초하루 동제가 끝나면 거기 썼던 정화수를 한병 떠 작살봉에 묻었다고 한다.방화수인 꼴이다 .
그런데 마을 바로 앞으로 용궁리 가는 길을 내기 위해 산을 자르고 있다.작살봉 화풍이 마을을 직접 내리치게 될까 자못 걱정이다. 〈풍수지리연구가.전 서울대교수〉 최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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