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딜버트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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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미국 독서계에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만화책 한권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초 뉴욕 타임스의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8위로 데뷔,곧장 1위로 올라가더니 지금까지 거의 20주동안 그자리를 버티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딜버트의 법칙』이라는 제목의 이 책내용은 만화만은 아니다.
만화에 풍자적 에세이가 곁들여진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89년부터 신문 연재만화로 히트한 화가가 이를 글로 부연했는데그것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본래 「딜버트」는 미국 전역의 1천개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의제목이자 그 주인공의 이름이다.
주인공 딜버트의 생김새는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영감」과 흡사하다.얼굴 모양이 통나무 같고 안경을 걸친젊은이다.
그가 근무하는 회사의 상사들은 무능하고,경영관리방식은 리스트럭처링 등으로 변화무쌍하다.
마음은 착하지만 세상사에 모질지 못한 딜버트는 회사의 비능률과 기업내 관료주의에 늘 실망하고 좌절한다.
작가 스콧 애덤스는 39세의 장년이다.17년동안 봉급자 생활을 하다가 실직당한 씁쓸한 직장경험을 갖고 있고,연재만화와 이번 저술에서 그것에 대한 일종의 보복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딜버트의 인기는 그 복수에 대한 많은 직장인들의 동감을 반영한다.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직장이 비생산적이고 답답하며,자신의 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딜버트의 인기는 증언하고 있다.
부하를 괴롭히는 윗사람들,쓸데없이 양산되는 규정들,유행따라 왔다갔다 하는 경영 스타일 등으로 근로자들은 지쳐있다.
직장은 따분하고 기다리는 것은 주말뿐이다.
「딜버트의 법칙」은 사우스 캘리포니아대 교수 로렌스 피터박사의 60년대말 저서 『피터의 법칙』에서 유래된 경영관리 용어 「피터의 법칙」을 상기시킨다.기업이나 조직에서 근무하는 사람은승진해 올라가다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직무를 적절 히 수행치 못하는 무능력 단계에 들어가 결과적으로는 회사나 조직 전체에 방해가 되고 악영향을 끼친다는게「피터의 법칙」이다.
그러면 작가 애덤스가 그의 만화속 주인공이 근무하는 회사의 상사들을 공박하면서 사용한 용어 「딜버트의 법칙」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무능력하고 비효율적인 직원일수록 중간의 경쟁단계를거치지 않고 곧바로 간부로 승진한다」는 역설적 주장이다.양쪽 법칙 모두 풍자를 바탕으로 하지만 간부가 정신차려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흔히 미국 사람은 설렁설렁 일하고 틈만 나면 노는 것으로 인식돼온 감이 없지 않다.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특히 경쟁이 심한 전문직의 경우 20대나 30대의 직장 초년들은 변호사 사무실에서,실험실에서,병원 당직실에서,회사 회의실에서 철야근무하는 일이 다반사(茶飯事)고 주(週)1백시간 이상근무가 드문 일이 아니다.못가는지,안가는지 불분 명하지만 휴가를 제대로 찾아먹는 근로자는 절반이 넘지 않는다.
***달라지는 미국근로자 딜버트에 대한 환호는 점점 심해지는격무와 경쟁에 대한 반사현상으로 풀이해야 할 것같다.
지금 미국 근로자는 달라지고 있다.지난주 미국 노동절을 맞아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 근로자의 생산성을 1백으로 할때 독일은 90,일본이 55로 나타났다.
우리의 물가.성장과 아울러 무역수지에 대한 우려들이 심각하다.문제는 우리 스스로의 경쟁력이다.바깥 세상 사람들이 바뀌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주총국장) 한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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