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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옐친의 건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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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제28대 대통령을 지낸 우드로 윌슨은 젊었을 때부터 병약했다.심한 두통에다 만성 소화불량증에 시달렸으며 신경쇠약증과동맥경화증의 진단을 받았다.1913년 백악관에 입주할 때 그의이삿짐 속에는 위장세척기와 다량의 약보따리들이 끼어 있었다.연임(連任)을 위한 선거를 앞두고 그는 마침내 뇌졸중으로 졸도하고 말았다.그러나 그 사실은 철저하게 감춰졌고 그는 가까스로 당선됐다.윌슨의 두번째 임기중 마지막 18개월간의 백악관은 병원이었고,정치는 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대통령의 경우도 비슷했다.1944년의 네번째 대통령선거 출마를 몇달 앞두고 그의 뇌동맥경화증세는최악의 상황을 치닫고 있었으나 주치의들은 『전혀 아무런 이상이없다』고 발표했다.손쉽게 당선됐음에도 루스벨트 는 취임한지 불과 몇주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간과할 수 없는 공통점은 두차례의 세계대전이 막바지로치닫던 중요한 시기에 미국 대통령이란 막중한 자리에 있었다는 점이다.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의 문제였던 탓에 그들의 행위능력과 판단력의 전부 혹은 부분적 손상은 중대 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한 나라 최고지도자의 건강은 국가운명을 좌우하게 마련이다.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있다면 스스로 포기하는게정치가의 기본윤리다.하지만 권력에의 끈질긴 욕망이 결단을 방해한다.20세기 이후의 미국대통령과 영국총리 가운 데 심각한 질병을 앓은 사람들은 무려 10명이 넘는다는 보고서가 나온 적도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 제임스 레스턴은 여러차례에 걸쳐 『대통령 입후보자는 의무적으로 전문의사집단에 의해 건강상태를 진단받아야 한다』며 『그들의 편인 의사의 발표를 신뢰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그 영향 탓인지 얼마전부터 정확한 건강상 태를 알리는 일은 일반화돼 있고,언론과 유권자들은 진위여부를 철저하게 감시한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경우도 그 자신은 물론,주치의들이 오랫동안 중병설을 부인해 왔는데 급기야는 심장수술을 받아야할 지경에까지 이른 모양이다.그의 건강상태가 앞으로의 러시아 정국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터인즉 귀추가 주목된다.『병은 숨기지 말랬다』는 우리네 속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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