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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식물은 '꿈의 신약 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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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전북대 생명공학부 양문식 교수의 연구실은 약 공장 같다. 벼 세포로 각종 치료용 단백질을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대장암 항체 유전자를 벼 세포에 집어 넣어 시험관에서 키우면 대장암 항체 단백질을 만들어내고, 면역조절제 유전자를 집어 넣으면 역시 면역조절제 단백질을 쏟아내는 것이다. 양교수팀이 개발한 획기적인 식물세포 배양 시스템 덕이다. 이 시스템은 영양분을 집어 넣은 배양액에서 세포를 키우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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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면역조절단백질(hGM-CSF)의 경우 ℓ당 150~200㎎을 생산할 정도다. 이는 기존 외국에서 개발한 기술에 비해 1000배 이상 생산 능력이 뛰어나다. 대장암 치료 항체의 경우 ℓ당 100㎎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외에 양교수의 연구실에서는 인터페론 알파, 상피세포촉진단백질(EGF) 등 다양한 의료용 단백질을 생산하고 있다.

모두 사람의 유전자를 벼 세포에 집어 넣어 벼가 사람 대신 그런 단백질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양교수의 연구실은 식물이 약물공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현장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의료용 단백질은 동물이나 동물세포를 이용해 생산해왔다. 독감백신이며 적혈구를 만드는 단백질인 EPO 같은 단백질은 모두 효모와 동물을 이용해 생산하고 있다.

산자부 차세대 신기술개발사업인 '식물체 이용 고부가가치 단백질생산기술사업단' 김대경(중앙대 교수)단장은 "미생물 등 동물을 이용해 단백질을 생산하면 생산 단가가 비싸며, 동물 세포에 들어 있는 여러 단백질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며 "식물에서 생산하면 그런 단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인간 면역 글로불린을 생산할 경우 동물세포 배양 방법을 사용하면 g당 1000달러, 유전자 조작된 동물을 사용하면 100달러가 들지만, 식물을 이용하면 50달러 이하에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식물에서 의료용 단백질 생산이 어려웠던 것은 인간 유전자가 식물에서도 기능을 발휘하게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유전자 조작 기술과 세포 배양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어 상용화 직전까지 오게 됐다.

식물에서 인간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인간 유전자 중 필요로 하는 특정 유전자를 잘라낸다. 인슐린을 만드는 유전자라면 그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효소)를 이용해 자르는 것으로 이 과정은 아주 쉽다. 그런 뒤 인슐린을 생산하게 만들 식물을 고른다.

그 식물을 벼라고 치면 벼의 유전자의 중간 부분을 잘라 그 사이에 사람의 인슐린 유전자를 집어 넣어 연결한다.

일종의 유전자 풀로 식물유전자와 인슐린 유전자를 붙이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의 유전자가 들어간 벼의 세포에서 인슐린 유전자가 작동해 인슐린을 생산하게 하는 식이다.

유전자의 이식은 동물에서 식물로,식물에서 동물로,미생물에서 식물로 등 자유롭다. 유전자를 구성하고 있는 DNA의 성분이 동.식물 가리지 않고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전자 이식은 종을 가리지 않는다.

현재 의료용 단백질을 식물에서 생산하려는 연구는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식물세포에서뿐 아니라 흙에서 자라는 식물에서 생산하는 연구도 병행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의 유전자공학 업체인 어플라이드 파이토로직스는 락토페린을 생산하는 인간 유전자가 들어가 있는 쌀을 재배하고 있기도 하다. 락토페린은 인체의 모유에 존재하며, 신생아의 면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이런 의료용 단백질의 세계 시장은 2012년에 120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때에는 식물로 생산한 단백질이 의료용 단백질의 한몫을 할 전망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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