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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공룡 멸종 원인 性比 불균형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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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중생대 2억년 동안 무적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공룡은 어떻게 멸종의 수순을 밟게 된 것일까. 고생물학계와 지질학계에 남아있는 수수께끼다.

*** 소행성 충돌로 기온 변화

지금까지 학계의 다수설은 중생대 마지막 지질시대인 백악기 말기, 그러니까 6500만년 전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면서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화산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면서 공룡의 멸종을 불러왔다는 것. 이것도 하나의 가설일 뿐 아무런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6500만년 전 이후의 지층에서는 공룡에 관한 어떤 화석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공룡의 멸종을 말해줄 뿐이다.

최근 공룡은 6500만년 전 소행성 충돌 이후 수컷이 암컷에 비해 수적으로 우세해지면서 멸종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공룡의 멸종 원인을 놓고 설전이 대단하다.

영국 리즈대의 데이비드 밀러 박사가 논란의 불씨를 제공했다. 밀러 박사는 "현존하는 악어와 같은 파충류가 태어나기 전 주변의 온도에 의해 수컷 또는 암컷의 성이 결정되는 만큼 공룡 또한 소행성 충돌 이후 성비의 불균형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악어는 알을 흙으로 덮어두는 데 그 안의 온도가 일정 정도 온화하면 수컷이, 그보다 기온이 오르거나 몇 도 떨어지면 암컷이 태어난다. 밀러 박사팀은 당시 중생대가 열대성 기후를 방불케 했으나 화산 폭발 등에 따른 거대한 먼지 구름 때문에 햇빛이 차단됐고, 결과적으로 육지의 기온이 수컷이 많이 태어나는 수준으로 온화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암컷이 태부족인 상황이 초래돼 힘겨운 시기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공룡은 짝을 찾지 못해 멸종했다고 설명했다.

밀러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성비가 20 대 80으로 쏠릴 때 동물 1000마리는 50세대(500~1000년) 만에 멸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셔먼 실버 박사는 "6500만년 전 지구의 환경은 생물이 멸종할 정도로 유독하지 않았다"며 "공룡과 같은 거대 동물이 온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적인 메커니즘으로 진화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포유류의 경우처럼 온도가 아닌 X와 Y 염색체에 의해 성이 결정되는 수준으로 진화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6500만년 전 진화를 끝낸 악어와 거북이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데 대해 밀러 박사는 "악어와 거북은 바다와 육지에서 번갈아 가며 살았기 때문에 극단적인 환경변화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고 그에 따라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수컷 급증으로 짝짓기 못해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내 대표적 공룡학자인 지질자원연구원 이융남 박사는 "6500만년 전 이전부터 소행성에 의한 충돌이 계속되면서 극한적인 상황이 이어졌고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지름 10㎞의 소행성이 '카운트 펀치'였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공룡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박사는 "기온에 따른 성별 선택 메커니즘은 익룡을 포함해 수중생물인 암모나이트까지 멸종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공룡이 파충류와 유사한 형태로 성을 결정지었다는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여지껏 공룡의 DNA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티라노사우루스에 암컷과 수컷이 있었다는 증거도 꼬리뼈 부분의 미세한 차이를 통해 알려졌을 뿐 유전자 상의 차이를 알아낼 수 있는 DNA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영국 리버풀 존 무어대의 베니 피서 교수는 "대량 멸종시기에 앞서 살았던 생물들 가운데 50% 이상이 멸종됐다"며 "최악의 희생은 바다 생물이었던 만큼 성별 선택 메커니즘이 공룡시대의 종말에 대한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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