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빼는 외국인…헤지펀드가 주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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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과연 '중국 쇼크'때문만일까. 뭔가 다른 낌새가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며칠 새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갖게 되는 의문이다. 증권계에선 외환위기 때의 악몽이 떠오른다는 소리도 들린다.

중국 원자바오(溫家寶)총리가 경기과열 억제조치를 공식 천명한 지난달 28일 이후 국내 증시를 이탈한 외국인 자금(순매도 금액)은 2조원을 훌쩍 넘었다. 그 여파로 주가도 급락했다. 이런 현상은 아시아 각국 증시에서 똑같이 나타나긴 했지만, 한국에서 그 강도가 상대적으로 컸다. 다만 매도 규모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외국인 왜 떠나나=한국에만 더해진 특별한 악재는 찾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지난해 5월 이후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금(약 26조원)은 사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았다"면서 "이중 단기 투기성자금(헤지펀드)이 중국 쇼크와 미국의 금리인상 움직임이 겹치자 일시에 이탈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 증시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큰 데 대해 정전무는 "국내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외국인들만의 잔치가 벌어지다 보니 막상 빠져나가려 해도 마땅히 그 물량을 받아줄 세력이 없어 그런 것"이라고 진단했다.

UBS증권 진재욱 한국대표는 "삼성전자가 2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들어가자 외국인들이 이를 차익실현 기회로 활용하던 차에 중국 쇼크가 터지는 바람에 매도 규모가 과해진 측면이 있다"며 "최근 자금이탈은 헤지펀드 자금이 주류이고 장기 투자자금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교보증권 임송학 이사도 헤지펀드의 움직임으로 최근 증시 흐름을 분석했다. 헤지펀드들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달러화가 계속 약세를 보이자 달러 자금을 빌려 국제 원자재 시장과 아시아 증시에 집중 투자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설 조짐을 보인 데다▶중국의 경기 진정책으로 위안화의 평가절상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고▶그에 따라 국제 원자재 값도 떨어지자 헤지펀드들이 투자자금을 회수해 일단 빚을 갚아야 할 상황에 몰렸다는 분석이다.

임이사는 "그동안 한국에 들어온 헤지펀드 자금은 대략 3조~5조원으로 추정된다"며 "떠날 자금이 좀더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신원 금융시장분석팀장은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앞장서 한국경제의 성장 전망치를 높이고 삼성전자의 주가 전망치도 100만원선까지 올리는 상황이었다"면서 "달러화와 위안화 등의 환율 변수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연구원 박재하 연구위원은 "헤지펀드 움직임만으로 설명하는 건 무리"라며 "한국경제가 중국 의존 일변도로 나가는 등 취약한 성장여건에 노출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럼에도 외환위기 때와는 분명 다르다"며 "국내 투자환경을 개선하고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얼마나 계속될까=중국경제의 연착륙 여부가 관건이다. 만약 경착륙한다면 한국경제가 받을 타격은 심각할 수밖에 없으며, 장기투자 자금까지 이탈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LG경제연구원 박래정 연구위원은 "중국 정부가 금리.환율 등 금융시장의 가격변수에 맡기지 않고 직접 대출을 조절하겠다고 나선 만큼 연착륙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감안할 때 올해는 중국이 경기를 진정시킬 적절한 시점"이라며 "최근 중국의 경기진정책은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이정호 투자전략팀장도 "중국경제의 기초여건이 훼손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안정된 성장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외국인 자금의 이탈은 조만간 수그러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이탈에 따른 주가 조정은 국내 증시의 외국인 편중 현상을 줄이는 긍정적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UBS증권 진대표는 "외국인조차 외국인 독주에 따른 주가 널뛰기를 우려했으며 이것이 최근 현실로 나타났다"면서 "주가가 조정을 보이면 한국의 연기금 등이 보다 편한 분위기에서 주식투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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