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2396억 달러 중 실탄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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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기준으론 합격점=9월 말 외환보유액은 2396억7000만 달러. 올 들어 225억5000만 달러가 줄었다. 주로 원-달러 환율의 급등을 막는 데 쓰였다. 외환보유액 규모는 중국·일본·러시아 등에 이어 세계 6위다. 절대액 자체로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외환보유액이 적정한지를 따지는 통일된 기준은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에 따르면 유동외채(단기외채+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장기외채)보다 많으면 ‘안정적 수준’으로 간주된다. 6월 말 현재 유동외채는 2223억 달러이므로 외환보유액이 이보다 170억 달러가량 많다. 일단 IMF 기준의 합격선에 든 것이다.

문제는 외환 당국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가용 외환보유액’ 규모다. 이른바 ‘실탄’ 개념이다. 일각에선 1년 내 상환요구를 받을 수 있는 유동외채만큼은 쌓아 둬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쓸 수 있는 실탄은 외환보유액에서 유동외채를 뺀 나머지라는 것이다. 이 경우 가용 외환은 약 170억 달러뿐이 다.

그러나 외환 당국은 이런 계산이 가용 외환보유액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따진 것이라고 반박한다. 우선 유동외채가 실제보다 부풀려 집계됐다는 점이다. 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의 본점 차입과 환헤지용 선물환처럼 우리의 상환 부담이 없는 항목은 빼야 한다는 것이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전체 외채 중 상환 부담이 있는 규모는 약 1600억 달러로 현재 기준으로 약 800억 달러가 가용 외환”이라고 추정했다.

정부는 또 해외 금융회사들이 유동외채를 한꺼번에 갚으라고 요구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입장이다.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우리에게 돈을 줘야 할 사람은 안 주고, 우리가 돈을 지불해야 할 사람에게만 주는 상황을 전제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아예 가용 외환보유액 개념이 따로 없다고 설명한다. 하근철 한은 국제국 차장은 “외환보유액 자체가 모두 가용금액”이라고 말했다.

◆숫자보다 심리가 문제=“경상거래와 자본거래를 합한 보수적 기준으로는 외환보유액이 부족할 수 있다”는 의견(현대경제연구원)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외환보유액은 넉넉하다”(박병원 수석)는 정부 설명에 동의한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유동외채를 감안해 극단적으로 말해도 1년은 버틸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문제는 심리다. 극심한 달러 가뭄에 시달리는 시장은 외환보유액 감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외환보유액이 급감하면 시장이 정부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환보유액이 많다고 해도 정부가 민간에 달러를 대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대규모 예금 인출이나 펀드 환매 사태 같은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렬·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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