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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가족을 논하다] "시대 맞춰 부부 역할 조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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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가정의 달 5월을 하루 앞두고 성균관 최근덕 관장과 서울 법대 양현아교수가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만났다. 최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한국가족의 문제를 짚어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성균관의 수장과 서울 법대 최초의 여자교수. 호주제 폐지 문제를 놓고 찬반의 선봉에 섰던 두 사람은 부부의 역할 조정 문제를 놓고 의외로 쉽게 일치점을 보이기도 했으며 전통과 최첨단의 입지처럼 계속된 평행선을 긋기도 했다. 2시간 동안 계속된 대담속에서 두 전문가가 제시하는 해법을 들어본다.

▶양현아(이하 양)=최근 저출산.이혼율 급증.혼인 기피.기러기 아빠.노부모에 대한 반기 등이 드러나면서 가족 해체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지요.

▶최근덕(이하 최)=우리 가정은 지금 과도기에 놓여있어요. 형태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했지만 가족 의식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경우가 많아요. 가치관의 혼란으로 가족 문제가 생기지요.

▶양=저는 한국가족이 직면한 현상을 가족 해체나 위기라기보다 가족의 변화로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전체의 문제가 가족을 통해 표출되면서 생긴 변화라는 거지요. 예컨대 이혼이나 결혼 기피 문제 등은 취업 여성의 증가, 여성의 고등교육, 대중문화의 영향 등과 맞물려 있습니다.

▶최=사회의 문제가 가정으로 몰려올 때 가정이 이겨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못하면 이혼이나 저출산 같은 부정적인 결과가 생깁니다. 어느 방송국 조사에 의하면 가사분담 문제로 티격태격하다가 이혼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군요. 이건 성격차가 아니라 가치관의 차이지요.

▶양=저는 그 가치관이 생기는 사회.문화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한국가족 중에 부부만으로 이뤄진 가족이 10%를 넘습니다. 남편.아내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살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있어 남자들이 가사노동을 잘 하지 않지요. 이 때문에 일차적으로 여성들이 고통을 받지만 남성들도 아노미 현상을 느끼고 힘들어합니다.

▶최= 산업화 이후 가족형태가 바뀌어도 부부간의 역할분담은 변하지 않았어요. 맞벌이인데도 남편은 아내가 아침을 차려주겠거니 생각하고, 아내는 같이 출근하니까 당연히 같이 준비한다고 생각하고요. 역할을 지혜롭게 재조정해야 합니다. 처음 어긋날 때는 몰라도 나중에 괴리상태가 커지면 감당 못하고 이혼까지 가게 되지요.

▶양=자랄 때는 남녀가 균등한 교육을 받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일수록 평등의식이 강합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차별적인 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근대화가 되면서 사회는 변하는데 가정은 시간 맞추기를 못해 이런 결과가 빚어집니다.

▶최=가치관을 조율하는 지혜는 우리 전통에서 구할 수 있어요. 조선시대에도 많은 가정에서는 여성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지위는 굉장했지요. 살림권을 전부 어머니가 쥐고 있지 않았습니까. 특수계층에서 자행한 악습을 확대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양=한국사회에 있는 남녀 차별주의의 원인을 모두 유교로 돌리는 태도는 비역사적이고 무책임합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 이후 유학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남녀평등적인 입장을 표명했어야 했는데 호주제 폐지나 동성동본 결혼 문제 등에 있어서 가부장적인 문화를 옹호했다는 책임은 있어요.

▶최=개인적인 얘기지만 나도 집에서 설거지도 하고 밥도 합니다. 이사할 때 살 집을 결정하는 것도 늘 아내의 몫이었지요. 살면서 한번도 이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참고 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해서지요. 남녀가 대립하지 말고 서로 조율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양=저는 가족의 문제가 남녀의 갈등이라기보다는 생산과 재생산과의 갈등이라고 봅니다. 노동시장에서의 노동활동을 생산이라고 본다면 살림살이 노동은 재생산이라고 할 수 있지요. 농경사회에서는 생산과 재생산이 유기적으로 통합돼 잘 돌아갔지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육아.노인양호.가사노동을 맡고 있는 전업주부만 무급노동을 하는 셈입니다.

▶최=요즘 젊은 남자들 중에도 신화 속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있어요.할아버지.아버지 시대에는 아내를 종으로 부리면서 산 줄 알아요. 그런 꿈을 깨야 합니다. 그런 꿈이 이혼사유가 됩니다.

▶양=가정에서 가사분담을 놓고 벌어지는 갈등을 풀기 위해 개인의 지혜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가사와 직업을 양립할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을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해줘야 합니다.

▶최=보육제도만 잘 정비해도 가족 내의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어요.

▶양=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세대갈등도 극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효'라는 가치를 정치인.교육자들이 무책임하게 강조해온 측면도 있습니다. 세대갈등을 푸는 열쇠는 대화입니다.

▶최=나는 세대갈등이 많이 해소됐다고 생각해요. 또 세월이 해결해 줄 거고요. 나는 효가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강화시킨다고 생각해요. 효는 주고받는 윤리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자애와 사랑을 주고 받는 거지요.

▶양=저는 제도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노인복지문제도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됩니다. 노인연금의 강화 등 복지정책을 확충해 사회가 노인문제를 떠맡아야 합니다. 가치관의 문제로 다 해결하려는 방식이 오늘날 갈등을 낳았다고 볼 수 있지요.

▶최=이 문제에 대해서는 차이가 확 느껴지네요.(웃음)

▶양=점점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한부모가정.딩크족.동거커플 등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지요. 너무 지나치게 '정상가족' 모형에 집착하면 다수의 문제가정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과 우애를 바탕으로 한 동거집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나는 이혼가족과 독신으로 사는 1인가구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회가 나서서 방지할 수 있다면 막아야 합니다.

▶양=최근 30년 동안 이혼이 10배나 늘었습니다. 결혼의 의미가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이혼을 단지 사회악으로 보지는 않아야 합니다. 또한 이혼가정이 더 큰 불행으로 빠지지 않도록 사회가 지원해야 합니다. 양육비 청구권이나 면접교섭권 실행을 강화하고 이혼가정을 위한 방과후 시설을 확충하는 등의 제도가 필요합니다.

▶최=어느 가정이든 시한폭탄을 안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터질 수 있지요. 그 시한폭탄을 터뜨리지 않기 위한 선배들의 충고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우리 가족제도는 건전하고 건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그 가족이 해체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겠지요.

▶양=법이 공정하다 해도 개인이 지혜로 풀어야 할 공간은 여전히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현재의 가족이 겪고 있는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가족 관계를 반영하는 쪽으로 법이 개정되고 제도도 마련돼야 합니다.

정리= 이지영,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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