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어떤 지도자여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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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지도자들의 움직임이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여권의 핵심부는 권력의 누수현상을 우려해 대선후보의 가시화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고 있다.그러나 민주국가에서 정치지도자의 자질은 반드시 조작과 선 전술로 왜곡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여론의 검증을 거치게 돼있으므로 우리는 대권후보들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봐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국가에서 국민적 정치지도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또 군부같은 특정집단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진정한 정치지도자는 국민과 역사 속에서 시대의의미와 과제를 터득하면서,그리고 국민의 소망을 몸으로 실천하면서 지도력을 높이고 익히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내년 대통령선거는 우리 민족 역사상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다음 대통령은 2000년대 세계질서 흐름 속에서 국가의 좌표를 제대로 설정하며,국제경쟁력을 제고시키고,안으로 민주개혁을 완성해 지역.사회적 갈등의 해소로 현대적 시민사회의 힘을 축적함과 동시에 언제 폭풍처럼 밀어닥칠지 모를 민족통일 대업의 과제를 안고 있다.
20세기 우리 민족에 가해진 험난한 역사의 과정,식민지 36년,분단 52년,3백만명의 희생을 치른 한국전쟁,군사독재 30년을 경험한 20세기 정치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민족사의 장을 여는데 앞장설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97년 대 통령선거다.
97년 대선에 도전하려는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의 표를 모으기 위해 제각기 새로운 분장을 서두르면서 무대출현 준비를 하고 있다.그런데 그 모든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21세기가 소프트웨어가지배하는 정보화시대라 하여 소프트마인드로 너도나 도 치장하기에바쁘다. 부드러운 리더십은 통합된 국민국가를 일찍이 이루고,시민사회의 만개를 거친 후 기본적인 국가사회문제가 극복된 성숙한초국가 단계에서 평화를 구가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유형이다.우리의 경우 그런 정치적 리더십은 국민해체의 고질 병인 지역갈등이 해소되고,분배의 균형이 이뤄지고,통일이 성취돼 국가통합이 완성된 뒤에나 논의될 수 있는 리더십의 유형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지도자는 시대의 과업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면서 총체적인 국가경영능력을 갖춰야 한다.그러한 지도력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는 국민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서 헤쳐나가면서 희망과 횃불을 들 때 성장한다.그런데도 저 암울하던 군사독재시절 조국.국민.민주주의를 위해 박해와 투옥의 고난을 치르면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리더십을 축적해오던 지도자들이 과거의 경륜을 희석시키면서 인기에 영합해 새로운 변신의 경쟁을 하는 모습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대의보다는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가남이가?」에 휩쓸리는 경향도 있지만 지도자는 오도된 여론을 추종하기보다 바른 여론을 이끌면서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정치를 지도하는 힘의 원천은 국민의 소망과 어 려움을 대행하면서 축적되고 녹아져서 형성되는 것이다.
시대에 대한 통찰력.지도력.결단력.정치력의 원천은 아무 곳에서나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이 세상에서 당장 내 앞의 평안과 이익을 버리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조국.민족.국가.인류의 대의에 생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보다 정치인 으로서 더 지고(至高)한 선(善)과 덕목(德目)이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조국은 항상 평온할 수 없다.따라서 조국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안일을 추구하지 않고 흔쾌히 목숨을 바칠 줄아는 헌신적인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국민은 그 덕목을 인정할줄 알고 행동할 때 걸출한 지도자가 양산될 수 있다.
백경남 동국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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