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업>영화 "깡패수업" 출연 조은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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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삼류작가 효섭을 짝사랑하는 극장 매표원 서민재로 나온 조은숙(23)은 매우 사실적인 연기 때문에 실생활도 영화와 똑같을 것이란 착각을 주었다.캐릭터가 배우속에 들어앉은듯한 호연이어서 『배우 아닌 일반인이 자기 경험대로 연기한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그런 평가로 배우 조은숙의 역량을 재는 것은 속단일지 모른다.홍상수 감독의 뛰어난 자연주의적 연출 덕을 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여기에 동의한다.『배우란 자 의식은 전혀 없었고 그냥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생각으로만 연기를 했어요.그런데 결과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져버린 거예요.연출과 영화의 힘,그리고 배우의 위치를 어렴풋이 느끼게 됐어요.』 『돼지…』이전 『이도백화』(94년.개봉 불발)와 『헤어 드레서』(95년)에 출연 경력이 있는 그녀는 박중훈.박상민과 공연중인 네번째 영화 『깡패수업』에서야 비로소 「배우」란 호칭이 어색하지않게 됐다고 말한다.그렇지만 그녀와 대화 해보면 쉴새없이 출렁거리는 큰 눈동자에서부터 배우의 「끼」를 금방 느끼게 된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다리를 떨 정도로 수줍음 많은 성격이지만 마이크만 잡으면 전류가 온몸을 찔러대듯 신바람이 터지는 무대체질.무서운 얘기를 할 때는 어떤 징그러운 혼백이 몸에 들어온 기분에 지레 몸을 떨고,슬픈 얘기를 할 때는 몸이 설탕기둥이 돼 녹아버리는 느낌에 휩싸인다는 감정이입의 능력을 타고난 아가씨다.그런 그녀지만 『돼지…』의 화려한 성공을 안고 들어가는 『깡패수업』은 솔직히 부담스럽다.풋내기 깡패 박상민을 사랑하는 작부 「삼순」역은 매사 심각하고 자의식이 넘쳤던 서민재와는 정반대인 코믹 캐릭터.
『「이번 영화 보니까 걔 아니더라」는 말 들을까봐 겁나는 게사실이에요.그렇게되면 미련없이 때려치우고 딴 길 찾을 거예요.
아니라는데 하면 뭐해요.』 배우를 그만둔다면 한양여전 문예창작과를 졸업(95년)한뒤 취미로 써둔 시나리오와 단편소설을 출판해 작가라도 돼볼까 너털웃음을 터뜨린다.하지만 모처럼 터진 스포트라이트의 맛을 본 그녀가 배우를 쉽게 포기할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인 터뷰를 위해 그녀는 눈에 보라색 렌즈를 끼고 왔다.배우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다짐한 보라빛 눈동자에서 『돼지…』당시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유지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일까,당연한 연결일까.
글=강찬호.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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