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지도 들고 북 관통 가스관 설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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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러시아 정부 영빈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만나 면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모스크바=오종택 기자]


 이명박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29일 단독 정상회담은 당초 예정된 1시간보다 20분 더 오래 진행됐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종단철도(TKR) 및 시베리아 가스전의 북한 통과에 대한 이 대통령의 설명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준비해간 사진과 지도를 들고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 사업 타당성을 설득했다고 회담 배석자는 전했다.

특히 가스관이 철로를 따라 북한을 통과하면 한·러 양국은 비용이 절약되고, 북한은 통과료 수입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아주 흥미롭다. 북한을 설득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방한 때도 부시 대통령에게 사진과 지도를 들고 금강산 피격 현장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으로 한반도에 공급하고, 한국의 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연결해 극동 러시아 항만 개발 등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우리는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등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데 관심이 있다. 남북 간 정치·경제·인도적 접촉이 계속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협력하면 역할 키울 수 있다”=이날 정상회담은 크렘린 대궁전 녹실에서 열렸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금융 위기,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오늘 회담이 잘되길 바란다”고 운을 뗐다. 이 대통령은 “세계 경제가 어렵지만 러시아는 최근 10년간 고도 성장을 한 유일한 국가”라며 “지도층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위기가 있을 때 양국이 금융 분야 등에서 협력하면 역할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러시아 3개 방송사와 인터뷰한 내용을 재구성한 ‘권력의 포뮬러’라는 제목의 30분짜리 DVD를 선물했다.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권력은 잘못 쓰면 해악이 있을 수 있으므로 항상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두 정상은 회담 후 A4 용지 7장에 달하는 장문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러시아 방문 이틀째인 이날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및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면담 등 9개의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이 대통령은 한·러 비즈니스 포럼에선 “한·러 양국 간 전략적 협력 기반 구축을 위해 ‘3대 신실크로드’ 건설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철(鐵)의 실크로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를 연결해 태평양에서 유럽을 잇는 철로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에너지 실크로드는 러시아의 풍부한 자원과 한국의 기술력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내자는 뜻이며, 녹색 실크로드는 연해주의 농림지에 우리의 영농 기술과 효율적 경영 체계를 접목해 제2의 녹색 혁명을 이루자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러시아와 한국, 나의 인연은 매우 넓고 깊다”며 “외딴 시베리아 원시림 속에서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공동협력 사업을 구상하던 오래 전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스크바=최상연 기자 , 사진=모스크바=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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